최근 울산에서 열린 ‘대한민국 지방시대 엑스포’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 5개 초광역권과 강원·전북·제주 3개 특별자치도를 고루 키우는 ‘5극 3특’ 전략, 수도권 일극 체제를 넘어 전국 곳곳에 성장 엔진을 심어 국가 성장 지도를 다시 그리겠다는 구상이다. 울산은 전통 제조업의 심장부이자 수소·이차전지 산업을 발판으로 제조 AI 혁신을 이끌 전략기지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엑스포에서 울산이 ‘산업수도’를 넘어 ‘AI 수도’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내놓은 이유다.
울산의 강점은 뚜렷하다. 조선·자동차·석유화학으로 이어지는 3대 주력산업은 반세기 넘게 대한민국 수출과 성장을 견인해 왔다. 전국 최대 제조업 집적지에서 축적된 방대한 산업 데이터와 숙련 인력은 AI·디지털 전환 시대에 어떤 도시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현장 데이터의 보고(寶庫)’다. 그러나 그 견고함만 믿고 버티기에는 현실의 파도가 거세다. 글로벌 경쟁 심화, 탈탄소·친환경 규제 확대, 중국의 추격, 인구 감소와 청년 유출은 기존 성장 모델에 균열을 내고 있다. ‘잘하던 것’을 더 잘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이에 울산이 내놓은 해법이 바로 ‘AI 수도 울산’ 비전이다. 울산시는 제조산업용 소버린 인공지능 집적단지, 친환경 수중 데이터센터, RE100 전용 산업단지 등을 통해 AI 인프라와 인재, 기업을 도시에 모으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SK텔레콤과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울산에 대규모 AI 전용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는 울산이 명실상부한 AI 인프라 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지역 주도형 AI 대전환 사업 선정 등 중앙정부 공모사업 성과가 더해지면서 ‘산업수도에서 AI 수도로’라는 슬로건은 점점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울산이 AI 수도가 된다는 말은 단순히 서버와 데이터센터를 더 짓겠다는 뜻이 아니다. 산단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스마트 팩토리’로 전환하고, 중소 협력업체까지 AI·데이터 기술을 공유하며, 청년 인재가 모여드는 ‘테크 도시’로 변모하겠다는 선언이다.
지방시대 울산의 길은 산업 전략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5극 3특 전략이 지향하는 것은 성장엔진과 삶의 질의 동시 향상이다. 사람을 불러들이고, 머물게 하고, 키워 내는 도시가 되어야 지속 가능한 성장의 선순환이 가능하다. 교육과 문화, 교통과 의료, 육아와 돌봄, 청년 주거와 일자리, 중장년 재취업과 평생학습까지 삶의 기본 인프라가 갖춰질 때 울산은 ‘일자리 많은 도시’를 넘어 ‘살기 좋은 도시’로 인정받을 수 있다.
지방시대는 중앙이 정답을 내려주는 시대가 아니다. 국가 균형발전의 큰 그릇이 5극 3특이라면, 그 안을 무엇으로 채울지는 각 지역의 몫이다. 울산의 해답 역시 울산의 역사와 산업, 지리와 사람 속에서 나와야 한다. 산업수도라는 유산 위에 AI와 에너지 전환을 더하고, 동남권 주요 도시들과의 1시간 생활권을 활용해 ‘일하기 좋고 살기 좋은 도시’를 함께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울산 성장엔진의 미래일 것이다. 앞으로는 데이터와 에너지, 그리고 사람과 삶의 질이 울산을 키울 것이다. 5극 3특 지방시대, 울산은 전통 주력산업의 강점을 살리면서도 첨단 미래산업으로 과감히 갈아타는 도시, 공장에서 번 돈이 교육·문화·복지로 순환되는 도시, 수도권과 경쟁하면서도 지역 정체성을 지키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김연옥 울산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