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투르니에는 <노년의 의미>에서 “늙는 것도 배워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짧은 문장은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나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늙는다는 것은 단순히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과정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투르니에는 그것을 새롭게 배워야 할 과제라고 말한다. 그는 노년을 쇠퇴의 골짜기가 아니라, 인생의 새로운 배움터이자 제2막으로 바라본다.
우리는 흔히 노년을 잃어가는 시기로 여긴다. 젊음, 건강, 일자리, 친구들, 심지어 배우자까지 하나둘 떠나간다. 그러나 투르니에는 “줄어드는 것이 있지만 늘어나는 것도 있다”라고 말한다. 젊은 날의 경쟁에서 벗어나 세상을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유, 내면의 평화, 관계의 온기를 더할 수 있는 여유가 바로 노년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어떻게 늙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특히 마음에 남은 대목은 노인의 거주 문제에 대한 그의 단호한 목소리였다. “노인의 거처를 옮기지 마라. 그것은 범죄다.” 오랫동안 살아온 공간을 떠나는 일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한 인간의 뿌리를 뽑아버리는 일이라는 그의 경고는 뼈아프게 다가왔다. 노년은 익숙한 장소와 친근한 기억이 깃든 공간에서 더욱 존엄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은퇴를 단순히 직업의 종료가 아니라 죽음을 예고하는 존재적 사건으로 본다. 준비되지 않은 은퇴가 인간을 무력감과 공허 속으로 몰아넣는 이유다. 그러나 투르니에는 이렇게 덧붙인다. “제2의 삶은 한창 활동할 때 이미 뿌려진 씨앗이 은퇴 후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그동안 길러온 삶의 자산이 꽃피우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의 메시지는 하나로 귀결된다. 수용하라. 나이듦을, 쇠약을, 그리고 죽음을. 하이데거가 “죽음은 인간이 태어난 순간부터 함께하는 사건”이라고 했듯,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노년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 고통과 불행에 가장 시달리는 노인은 질병과 노화를 부정하며 단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투르니에는 지적한다. 현실을 거부하는 반항은 고통을 더할 뿐, 삶의 현실을 수용할 때 비로소 편안함이 찾아온다.
노년이 요구하는 모든 포기는 몸에 관한 것이지 마음과 정신을 비우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에게 체념이 아닌 내려놓음의 지혜, 불평이 아닌 감사의 시선, 무력감이 아닌 내면의 자유를 배우라고 말한다.
노년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인생에서 가장 깊은 성찰과 가장 큰 자유가 허락되는 시간이다. 삶이란 결국 언젠가 도착할 종착역을 향해 가는 여정이다. 그러나 그 여정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삶을 다시 배우고, 다시 써 내려갈 수 있다. 늙는다는 것은 조금씩 내려놓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비워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삶으로 채워가는 일이다. 투르니에가 던진 질문이 오늘의 나에게 다시 울린다. “당신은 어떻게 늙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
정안태 '오늘하루 행복수업' 저자·울산안전 대표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