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AI 시대를 맞아 대기업, 특히 반도체와 첨단 기술 산업에서 철학·언어학·문자학 등 인문학 전공 인재를 적극적으로 찾는 기사를 접했다. 이런 현상은 산업의 필요가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기술 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산업의 핵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AI가 고도화될수록 기업과 사회는 더 빠른 계산 능력보다 더 깊은 판단 능력을 요구받고 있다. AI는 이미 인간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분석, 설계, 번역, 진단까지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그러나 AI는 스스로 목적을 설정하지 못한다. 무엇을 효율화할 것인지, 어떤 결과를 용인할 것인지, 실패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이 지점에서 인문학은 기술의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부로 이동한다. 철학은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언어학은 인간 사고가 언어를 통해 어떻게 구조화되고 왜곡되는지를 보여준다. 문자학과 역사학은 기록된 정보가 시대와 권력에 따라 어떻게 해석되고 오용되는지를 경고한다. AI는 데이터를 학습하지만, 데이터가 만들어진 맥락과 그 이면의 가치까지 이해하지는 못한다. 이 공백을 메우는 것이 인문학적 소양이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 세대가 인문학을 받아들이는 방식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인문학을 ‘AI에게 더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한 기술’ ‘프롬프트를 잘 쓰기 위한 도구’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생존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효율과 즉각적 성과를 중시하는 현실적 선택이기도 하지만 이럴 경우 인문학을 수단으로 축소시켜, 그 근본적 가치를 놓치게 만든다.
인문학의 본질은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에 있다. AI는 주어진 문제를 빠르게 풀지만, 그 문제가 과연 풀 가치가 있는지, 혹은 잘못 설정된 것은 아닌지 판단하지 않는다. 잘못된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은 오히려 사회를 위험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인문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멈춰 서서 생각하는 힘’을 제공한다. AI 시대에 인간만의 영역은 감성이나 창의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있지 않다. 그것은 가치 판단, 책임 윤리, 의미 해석이라는 고차원적 사고 능력에 있다. 알고리즘이 차별을 재생산할 때 이를 문제 삼는 감각, 자동화가 인간의 존엄을 침해할 때 이를 제어하려는 의지, 효율보다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우선할 수 있는 판단력이 인간의 고유 영역이다. 이 모든 것은 인문학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문학적 소양은 어떻게 일상 속에서 함양할 수 있을까? 첫째, 속도를 늦춘 독서가 필요하다. 요약과 하이라이트 중심의 독서가 아니라, 고전과 철학 텍스트를 끝까지 읽고 사유하는 경험이 중요하다.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붙들고 고민하는 시간 자체가 사고의 근력을 키운다. 둘째, 언어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어떤 전제를 담고 있는지, 뉴스와 보고서의 문장이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지우는지 의식적으로 살펴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언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힘은 곧 사고를 통제당하지 않는 힘이다. 셋째, 다른 시대와 다른 관점을 꾸준히 접해야 한다. 역사서, 인문 에세이, 타문화의 사유 체계를 접하는 일은 사고의 기준을 폭넓힌다. 이는 AI가 제공하는 ‘맞춤형 정보’의 편안함에서 벗어나 사고의 편식을 막는 역할을 한다. 불편한 관점을 견디는 능력은 성숙한 판단의 전제다. 넷째, 토론과 글쓰기를 통해 자신만의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야 한다. 인문학적 소양은 혼자만의 사색이 아니라, 사회적 검증을 통해 단단해진다. 다섯째, AI를 활용하되, 그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왜 이런 답이 나왔는가”를 되묻는 태도가 중요하다.
우리는 선택의 결과를 더 크게 감당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정답을 빠르게 찾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정답으로 삼을 것인지 숙고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인문학은 바로 그 숙고의 힘을 기르는 가장 오래되고도 여전히 유효한 훈련이다. 이것이 AI 시대에 인문학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일 것이다.
손재희 CK치과병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