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전동균 ‘겨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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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전동균 ‘겨울날’
  • 경상일보
  • 승인 2026.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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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진 언덕길을
한 떼의 지친 노동자들이 지나갔다
말없이 고개 숙인 채

그리고 쌓인 눈을 밟으며
얼굴이 붉은 저녁이 왔다
띄엄띄엄 선 나무들이 쉼표처럼
마른 열매를 떨구고

늙은이 혼자 사는 언덕 끝 집
흐릿한 불빛 속에
쌀 안치는 소리 빈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아무도 들은 적 없는
천축(天竺)의 음악처럼 반짝거렸다



생명의 온기를 품은 사소하고 가난한 소리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쓸쓸한 풍경이다. 눈 쌓인 언덕길, 노을이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드문드문 서 있다.

그 언덕길을 한 무리의 노동자가 지나간다. 하루 일을 마친 뒤 고단한 몸을 이끌고 묵묵히 귀가를 재촉하는 사람들. 언덕 끝에는 혼자 사는 노인의 집이 있다. 세상의 가장자리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참 외로운 집, 참 외로운 사람.

겨울나무 아래를 광주리를 인 세 명의 여인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박수근 화백의 <귀가>라는 그림이 생각나는 시이다. 배경 없이 단순한 이 그림은 황갈색 화강암의 질감을 지니고 있어 따뜻하고 안온한 느낌을 준다.

이 시에서도 쌀을 안치고 빈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사소하고 가난하고 보잘것없지만, 생명의 온기가 느껴지는 소리이다.

화자는 그 소리를 ‘아무도 들은 적 없는/ 천축(天竺)의 음악’처럼 반짝거린다고 하였다. 옛날엔 고승들이 구법을 위해 천축(인도)을 찾았으니, 천축은 인간의 고단한 삶 속에서 발견되는,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영적인 깊이와 아름다움을 지닌 소중한 가치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떨어진 열매는 긴 잠 끝에 새로운 싹을 틔울 테니, 한 생의 순환 앞에 붙는 ‘쉼표처럼’이란 말에서 느껴지는 시의 여백.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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