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물가 상승은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깊고 넓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에너지 비용 증가, 환율 불안, 글로벌 공급망 교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물가는 구조적으로 높아졌다. 여기에 국내 유통 구조의 문제와 각종 비용 전가 관행까지 겹치며 서민이 감당해야 할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문제는 이 상승의 고통이 공평하지 않다는 데 있다. 소득이 낮을수록, 고정지출 비중이 클수록 물가 상승의 충격은 더 크다.
서민의 삶에서 물가는 곧 생활비다. 쌀값, 채소값, 난방비, 전기요금, 대중교통비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줄이고 싶어도 줄일 수 없는 영역이다. 물가가 오르면 서민은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포기하게 된다. 신선한 먹거리를 포기하고, 의료비 지출을 미루며, 문화와 여가는 사치가 된다. 물가 상승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삶의 바닥을 깎아내린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중요한 정책 과제로 내세워 왔다. 그러나 서민이 체감하는 현실과 정책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일시적인 할인 행사나 단기적인 세금 조정만으로는 구조적 물가 상승을 막기 어렵다. 특히 농축수산물과 에너지, 주거비처럼 생활과 직결된 분야에서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가격을 통제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유통 구조를 개선하고 불필요한 중간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의 무게 중심이 옮겨가야 한다.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지역 간 격차다. 대도시보다 소득 수준이 낮은 농산어촌과 중소도시에서 물가 상승의 고통은 더 크다. 교통비, 난방비, 식료품 가격은 전국적으로 비슷하게 오르지만, 소득은 그렇지 않다.
서민 주머니를 녹일 대책은 단순한 숫자 조정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첫째, 생필품 중심의 물가 관리가 필요하다. 모든 품목을 잡겠다는 접근보다, 서민 생활에 직결된 핵심 품목을 선별해 집중 관리하는 전략이 현실적이다. 둘째, 에너지 비용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지역 경제를 살리는 방향으로 물가 정책을 연계해야 한다. 지역 생산과 지역 소비를 잇는 구조를 만들면 유통 비용을 줄이고 가격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언어다. 물가 안정은 통계로 설명될 문제가 아니다. 서민이 시장에서 느끼는 체감이 곧 정책의 성과다. 책상 위의 수치가 아니라 장바구니의 무게로 평가받아야 한다. 물가가 안정되었다는 말보다 “숨 좀 돌리겠다”는 서민의 한마디가 더 정확한 지표다.
물가 문제는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이다. 서민의 주머니가 얇아질수록 사회는 불안해지고, 미래에 대한 희망은 줄어든다. 추위는 계절이 바뀌면 지나가지만, 물가의 한파는 방치하면 일상이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여 주기식 대책이 아니라, 서민의 삶을 기준으로 한 정직한 해법이다. 물가 앞에서 더 이상 서민이 홀로 견디지 않도록, 국가와 사회가 함께 버텨주는 구조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이문학 자유기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