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동은 동무들을 불렀다.
“이제 나도 다시 예전의 천동이로 돌아왔다. 잠시 꿈을 꾼 거야. 서운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원하기도 해. 좋은 건 너희들과 같은 신분이 되었다는 것이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얼마나 속이 상하겠어? 면천법이 폐지되었다는 소식에도 울화통이 터졌었는데, 어렵게 면천이 되고 관직까지 제수 받은 게 공염불이 되었으니 그 속이 오죽하겠어. 나는 네 마음 알고도 남는다.”
“염해국 왕손이 다르긴 다르네.”
“천동아, 나는 진심으로 말하는 거다. 삐딱하게 듣지 마.”
“알아, 내가 너희들과 한두 해 같이 지냈니? 더 이상 얘기하지 말고 뜻을 같이하는 동네 사람들이나 잘 단속해. 한꺼번에 몰려가면 의심받으니까 떠나는 것은 각자 하기로 하는 거 알지? 가능하면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길을 택하여 사흘 뒤에는 내연산 입구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하자.”
“마동과 괴정, 송내, 화동마을에서 총 쉰두 가구가 같이 가기로 했어.”
“그 정도면 많은 제법 인원이 이주하는 거니까 정말 조심해야 한다. 잘못 걸리면 반란이나 역모죄를 뒤집어 쓸 수도 있어. 지금의 조정과 주상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지. 아무튼지 조심 또 조심해서 무사히 그곳에 이주할 수 있도록 하자.”
“알았어. 우리는 너만 듣는다. 마을 사람들도 다 그렇게 말했어. 천동이 너는 믿는다고. 우리 모두의 목숨이 너한테 달렸다는 거 잊지 마. 이제부터는 네 목숨이 너만의 것이 아니야. 너를 믿고 따라가는 마을 사람들 모두의 것이다.”
“가능하면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으로 가야 하니까 동대산 동쪽 자락으로 해서 토함산, 비학산을 거쳐서 내연산으로 이동하도록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줘. 최종 목적지인 주왕산의 내원마을은 내연산에서 모인 후에 알려줘야 한다. 그곳에는 이미 전란을 피해 숨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수가 아홉 가구에 마흔일곱 명이야. 그들에게 우리의 계획을 설명하고 허락을 구했어.”
“네, 대장님. 그렇게 할게.”
천동의 부탁에 강목과 대식은 한목소리로 다소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천동이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가고자 하는 내원마을은 주왕산의 깊은 산중에 있는 곳으로 세 개의 물줄기와 세 개의 산줄기가 만나는 곳이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세 군데로 나누어서 흩어질 수 있도록 퇴로도 확보해 두었다. 제일 큰 위험은 역시 많은 인원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한두 가구씩 흩어져서 가기는 하지만 관군에게 검문을 당할 상황도 미리 설정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전란의 후유증이 많이 남아있고, 난을 피해서 타지로 갔던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상황이라서 적당히 둘러대면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글 : 지선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