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인기를 계기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충절의 상징인 원강서원을 울산의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25일 찾은 울산 울주군 삼동면 원강서원. 이날 엄주환 전 울산향교 전교와 엄정의 영월엄씨 울산종회 울산종중회장 등과 함께 원강서원 곳곳을 둘러봤다.
울산시 문화재자료 제10호인 ‘증 공조참판 엄공 원강서원비’에는 단종을 위해 충절을 다한 엄흥도의 행적이 기록돼 있었다.
단종이 세조에 의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된 뒤 1457년 10월 죽임을 당하자 엄흥도는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고 단종의 시신을 몰래 거두고 장례를 지냈다.
1799년(정조 23) 울산에 살고 있던 엄흥도의 후손들이 울주군 온산읍 대정리에 원강사를 세워 그의 제사를 받들었으며, 1817년(순조 17) 사림의 논의에 따라 원강서원으로 승격됐다. 이 비석은 1820년(순조 20)에 세운 것으로, 1994년 온산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현재의 위치로 오게 됐다.
홍문관 제학 조진관이 엄흥도의 행적을 찬술하고, 동부승지 이익회가 비문을 썼으며, 명필로 이름 난 이조판서 이조원이 제자를 썼기에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원강서원으로 들어서자 엄흥도를 모신 사당인 상절당, 강당 여수당, 기숙사인 동재 영수재, 서재 형모재, 정문 충의문이 갖춰져있었다.
단종의 시신을 거둬 장례를 치른 뒤 후환을 걱정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엄흥도가 남긴 말인 ‘爲善被禍 吾所甘心(선한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내가 마음에 달게 여기는 바이다)’가 적힌 사료와 임금이 제사를 지내라고 음식을 내려준 것과 온산에 처음 지어졌을때의 모습이 담긴 기록들을 살펴봤다.
원강서원에 있는 현판들은 매월당 김시습의 후손인 김진해가 쓰고 정찬식이 글을 새긴 것으로 정통성이 담겨있었다.
다만 세조가 단종의 시신을 거두면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 단종이 복권되기 전까지인 200여 년간의 흔적이 부재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기록의 부재로 원강서원 뒤편에 있는 무덤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실정이다.
원강서원을 둘러보는 동안 영화를 보고 나서 찾아온 모녀, 정관암을 들렀다 온 중년 여성 4명 등 시민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실제로 하루 평균 30명 이상이 찾을 정도로 방문객 수가 증가세다.
박혜동(61·울산 중구)씨는 “평상시에는 그냥 지나다니다 영화를 보고 엄흥도에 대해 알게 돼 정관암을 갔다 방문하게 됐다”며 “엄흥도의 업적에 대해 알고 둘러보니 역사적인 느낌이 강하게 든다”고 말했다.
관리 인원이 별도로 상주하지 않아 평소에는 원강서원의 문이 닫혀있어 시민들은 원강서원비만 둘러보고 가야한다. 원강서원을 안내하는 간판이 낡고 작아 시민들이 위치를 찾기 힘들다는 시각도 나온다.
이에 영화가 흥행하고 있는 지금 원강서원에 대한 관심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도록 울산의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문화관광해설사를 배치해 평소에도 원강서원 내부를 둘러볼 수 있도록 하고, 일대를 명예도로로 지정하는 등 관광 콘텐츠로 개발하자는 것이다.
엄주환 전 울산향교 전교는 “엄흥도를 충절의 모델로 삼아 이곳을 문화 콘텐츠로 개발해 후세에 남겨야한다.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기에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며 “울산시 차원에서 관리해줬으면 한다. 문화관광해설사가 배치된다면 원강서원을 개방해놓겠다”고 말했다. 글=권지혜기자·사진=김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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