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74)]중양절 국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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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74)]중양절 국화주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0.10.2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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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포은 정몽주(1337~1392)는 1375년(우왕) 울산 언양읍 어음리 요도라는 곳으로 귀양왔다. 정몽주는 이인임 일파의 친원정책에 강력 반대하다가 밀려났다. 그는 귀양 생활 중에 언양 반구대를 찾아 시름을 달래며 시를 지었다고 전한다. ‘언양에서 중구일에 회포가 있어 유종원의 시에 차운하다(彦陽九日有懷 柳宗元 次韻)’라는 시가 바로 이 시다. 포은은 귀양온 이듬해인 1376년 중구절에 이 시를 지었다. 이 시는 유배 시절에 지은 것이지만 널리 알려진 것은 조선 후기 영조 때부터다.



나그네의 마음이 오늘 더욱 쓸쓸한데/ 장기 어린 바닷가에서 물에 나아가고 산에 오르네.……용은 저무는 한 해가 근심스러워 깊은 골짜기에 숨고/ 학은 갠 가을이 기꺼워 푸른 하늘로 오르네./ 손으로 누런 국화를 꺾고 잠시 그저 한번 취하는데/ 옥 같은 님은 구름과 안개 너머에 있네



중양절(重陽節)은 음력 9월9일을 말한다. 9가 겹쳤다고 해서 중구일(重九日)이라고도 한다. 지난 25일은 정몽주가 시에서 읊은 중구일, 곧 중양절이었다. 포은은 언양에서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나라의 운명을 걱정했을 것이다. 백척간두에 선 고려를 생각하다가 문득 국화를 꺾어 향기를 맡아보고는 구름 너머에 계실 님을 생각했으리라.

 


중일(重日)은 날짜와 달의 숫자가 같은 날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도 3월3일, 5월5일, 7월7일, 9월9일 등은 중일 명절이라고 한다. 이처럼 홀수 또는 양수(陽數)가 겹치는 날은 중양(重陽)이라고 하는데 특히 9월9일을 중구(重九)라고 한다.

중양절은 국화주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중양절에는 ‘등고회(登高會)’라는 행사를 여는데, 이날 사람들은 붉은 주머니에 수유를 담아 팔뚝에 걸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며 재액을 날려보냈다고 한다.

‘술은 백가지 근심을 떨어 없애고/ 국화는 늙음을 억제해 준다네./ 어찌하여 초가집 속의 선비는/ 시절의 바뀜을 속절없이 바라보나…’. 도연명은 중양절을 좋아했다. 하지만 가난하여 국화주를 마실 수 없었다. ‘구일한거(九日閑居)’는 그런 회포를 담아 쓴 시다. ‘창밖에 국화심고 국화 밑에 술 빚어 놓으니/ 술익자 국화피자 벗님오자 달이 돋네…’. 남도민요 흥타령은 벗과 국화, 달을 노래한 희대의 절창이다. 가을 달밤의 정취를 국화주 한잔에 오롯이 담았다.

조선 가객 이정보 선생은 낙목한천(落木寒天)에 홀로 핀 국화를 향해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 뿐’이라고 했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만추에 국화주 한잔 나눌 벗이 그립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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