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88)]홍매가 피어야 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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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88)]홍매가 피어야 봄이 온다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1.02.0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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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입춘을 앞두고 통도사 홍매(紅梅)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올해는 유난히 한파가 길었던 한 해였다. 코로나도 한파 만큼이나 지긋지긋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도사 홍매는 용케도 꽃을 피웠다. 조선 중기 문필가 신흠은 이렇게 노래했다. 오동나무는 천년이 지나도 항상 그 곡조를 간직하고(桐千年老 恒藏曲),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 不賣香). 통도사 홍매의 향기는 추울수록 진하다.

“봄과 가을 그 좋은 시간들을 두고 홍매는 통도사 마당에 얼음이 꽝꽝 소리나게 어는 추운 계절에 꽃을 피웁니다. 처음에는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북풍한설 찬 날씨에 이를 악물고 꽃을 피우려는 것에 마음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홍매가 꽃을 피워야 통도사의 봄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홍매가 피어야 진달래가 피고, 진달래가 피어야 산수유가 피듯 꽃들이 차례차례 자연의 순서를 지키게되는 것이었습니다….”

정일근 시인의 글 중 한 구절이다. 홍매가 개화하는 시기는 입춘(立春)과 맞닿아 있다. 春(춘) 자를 풀어보면 풀(艸) 사이로 태양(日)이 그려져 있는 형상이다. 만물이 봄 햇살 아래서 싹을 틔우고 있는 모습이다. 바야흐로 땅에서는 새싹이 돋고, 나무에서는 꽃망울이 터지는 시기인 것이다.

입춘 하면 입춘축(立春祝)을 빼놓을 수 없다. 祝(축) 자는 ‘빌다’ ‘기원하다’ 라는 뜻을 가진 글자다. 兄(형) 자는 무릎을 꿇고 축문(祝文)을 읽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지금도 제사를 지낼 때는 축문을 읽어 신에게 제사가 시작됨을 고하게 된다.

1933년에 간행된 울산군 향토지를 보면 1930년대 울산에서 유행하던 32가지 입춘축 문구가 기록돼 있다. 대표적인 것들로 수여산부여해(壽如山富如海, 수명은 산과 같고 부는 바다와 같기를), 우순풍조시화세풍(雨順風調時和歲豊, 비와 바람은 순조롭고 한해 농사는 풍년들기를), 소지황금출개문만복래(掃地黃金出開門萬福來,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만복이 깃들기를) 등이 있다. 축(祝)의 간절함이 문구마다 배 있다.

황사 심하던 어저께 통도사에 갔다// 마음과 몸뚱어리/ 모래 먼지 뒤덮인 허공만 같아/ 대웅전 바닥에 한참 엎디어 울었다/ 속울음 실컷 울고 나니/ 내 허물 조금 보이는 것만 같다// 금강계단 되돌아 나오는데/ 천지간 황사 밀어내며 막 눈뜨는/ 홍매 한 그루, 나를 꾸짖는다…. ‘홍매도 부처 연두도 부처’ 일부(이종암)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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