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학연구센터, 2021년 교양서
주제 ‘분청자 도시, 울산’ 채택
울산 분청사기의 맥 연구에 나서
지역내 분청자 가마터 다수 확인
공납되었던 울주군 삼동면 자기
현재엔 차 도구로 전국서 인기
1454년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언양에 자기소가 1곳, 도기소가 1곳인데 모두 현 남쪽 대토리(大吐里)에 있다’고 했다. 이 대토리는 지금의 하잠리를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울주군 삼동면 하잠마을을 조금 벗어난 곳에 옛날 ‘사기등’(沙器嶝)이라고 불리던 가마터가 있다. 대암호 북쪽 기슭에 있는 이 가마터는 2000년 위덕대학교박물관과 울산대학교박물관이 함께 조사해 청자와 분청사기, 백자 등을 수습했다.

이때 출토된 분청사기 조각에는 ‘언인’(彦仁), ‘수영’(水營)의 문자가 확인된다. ‘언인’(彦仁)의 언(彦)은 그릇의 생산지인 언양현, 인(仁)은 조선초 중앙관청인 인수부(仁壽府)를 뜻한다. ‘수영’(水營)은 조선전기에 울산 개운포에 있었던 경상좌수영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하잠리 가마터에서 생산된 자기가 중앙과 지방으로 공납되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이처럼 한국의 도자역사 중에서 울산과 분청사기와의 연관성을 짚어보고, 사라진 듯 여겨졌던 울산지역 분청사기의 맥이 현 시대에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알아보는 연구가 처음으로 시도된다. 울산연구원(원장 임진혁) 울산학연구센터는 올 하반기 출간할 2021 교양서 주제로 ‘분청자 도시, 울산’을 채택했다.
분청자는 회색 또는 회흑색의 태토(胎土) 위에 백토로 표면을 분장한 조선 초기의 도자기다. 정확한 명칭은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다. 고려청자에서 조선백자로 이어지는 과정에 등장해 15~16세기 약 200여년간 활발하게 제작됐다. 안정감 있고, 실용적인 모양이 많았다. 또 장군·자라병·편병(扁甁)·매병(梅甁) 같은 특수한 모양도 제작됐다. 16세기 이후에는 무늬보다 백토분장이 주가되어, 차츰 태토와 표면분장이 백자화됐다. 임진왜란 이후 서서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고, 사라진 듯 보였던 분청자가 다시 선보이게 된 시기는 해방 전후로 알려져 있다.
울산지역에서 확인되는 분청자 가마터는 하잠마을 이외에도 두동면 천전리 고지평가마터, 언양읍 직동리·태기리·평리가마터, 언양읍 반연리 토골가마터, 청량읍 삼정리가마터, 삼동면 둔기리가마터가 있다.
현재 삼동면 일원에서 다수의 장인들이 제작하는 분청사기는 울산뿐만 아니라 전국의 차인(茶人)들에게 인기가 높다. 울산의 분청자를 차 도구로 구입하기 위해 해마다 많은 차인들이 울산으로 방문할 정도다.
울산학연구센터는 “울산의 분청자 역사를 정리하여 새로운 주제를 지역문화사(史)에 등장시키고 지속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