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상의 世事雜談(52)]언변(言辯)은 타고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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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범상의 世事雜談(52)]언변(言辯)은 타고나는 것인가
  • 경상일보
  • 승인 2021.11.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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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으니까 1961년, 벌써 60년 전의 일이네요. 서울의 경우 한 교실에 80~90명이 빼곡히 들어앉아 공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마저도 저학년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가운데 제일 앞자리가 나의 자리였고 내 옆은 친구 K의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수업도중에 갑자기 고약한 냄새가 살짝 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담임선생님과 나는 거의 동시에 그 냄새의 진원지와 함께 긴급상황임을 알아차렸습니다. K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대응은 과연 빨랐습니다. 수업을 즉시 중단하시더니, 나와 K만 빼고 모두 바깥으로 나가라고 했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아이들이 모두 교실 밖으로 나가자 선생님은 나에게 ‘너 K네 집 알지? 빨리 가서 K의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속옷 준비해서 즉시 오시라고 전해라’고 했습니다. 나는 K의 집을 향해 전력을 다해 달렸습니다. ‘K가 똥 쌌어요’라고 하면 그의 어머니가 무안해 하실까봐, ‘K가 공부도중에 자신도 모르게 변이 나왔어요’라고 말씀드린 게 아직도 생생합니다. K의 어머니는 속옷 등을 가지고 학교로 와 수돗가를 거쳐 상황은 해결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나를 부르시더니 ‘너 이 이야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면 K는 친구들로부터 평생 ‘똥싸개’라는 별명을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나의 가족은 물론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명랑쾌활하고 인기 있었던 나는 이때부터 말수가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상황이 나를 과언(寡言)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15년 후, 나는 나의 절친 S와 같이 자취하며 해군장교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시절 S는 각종 백일장에서 장원(壯元)을 밥 먹듯이 하던 문재(文才)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글재주에 비해 말재주가 없다고 늘 자신을 한탄하곤 했습니다. 월요일 조회시간에 글로 상을 타던 그와는 반대로 나는 금요일 소풍가면 노래를 불러 상을 타곤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한번 들은 유머는 절대 잊지 않았으며, 영화보고 그 내용을 남에게 얘기하면 그는 영화를 실제로 본 것보다 더 이해가 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수려한 외모를 지닌 S와 내가 같이 시내의 맥주집에라도 등장하면, 어쩌다 동석한 여자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그에게 쏠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을 몽땅 나에게로 돌리는 데에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게도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신(身)과 서(書)는 그에게, 언(言)과 판(判)은 나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해군사관학교에서 그 재미없는 수학을 흥미만발하게 강의하던 나는 해군대학에서 그 재미있는 역사학을 하품만발하게 강의하던 그에게 재미있게 강의하는 법, 말로 웃기는 법을 가르쳤고, 나는 그로부터 글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후 그는 말로 먹고사는 방송인을 거쳐 정치인이 되더니 지금은 원래의 소질을 살려 소설가로 변신하였고, 나 역시 말과 글로 먹고사는 평생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당시의 나의 언변(言辯)이랄까 다언(多言)버릇은 타고 났다기보다 오히려 호구지책(糊口之策)성 자기과시, 즉 생존목적 때문이었다고 느껴집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평생직장도 졸업하고 인생의 가을에 진입하니 나는 다시 입을 닫아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말이라도 시원하게 할라치면 ‘잔소리꾼’ ‘꼰대’라고 여길까봐 우려될 뿐 아니라 나의 말이 재미없는지 딴청을 부리는 청취자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옵니다. 확연히 말수가 줄었지만 나보다 말을 더 많이 더 잘하는 친구들이 우후죽순 나타난 것도 이유의 하나입니다.

말 대신 휴대폰문자로 소통하고, 문자도 길면 폐(弊)가 되어 약자(略字)가 유행하는 시대입니다. 옆방사람과도 문자로 대화합니다. 지갑은 열되, 입은 닫으라는 무언(無言)의 분위기가 압도합니다. 어떤 때는 여인들 모여 수다 떠는 것이 부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말하기보다 남의 말 듣기가 점점 더 편해지기도 합니다. 친구들 만나 얘기하다보면 한 시간도 안 되어 할 말이 없어져 어느새 애꿎은 휴대폰에 코 박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다시 과언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결론하건대 언변(言辯)은 타고난다는 사실을 나는 믿지 않습니다. 상황이 언변을 만들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은 사람을 말없게도 하다가, 말 많게도 합니다. 말 대신 주로 글로 사는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 시절 친구로부터 글 쓰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이 풍진 세상을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찔합니다.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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