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산업계와 노동계의 가장 큰 화두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다. 사업장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나 법인에게까지 처벌을 확대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돼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노사를 돕고 중대재해를 사전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법은 아이러니하게 노사 모두에서 불안과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재 책임주체 확대
지난해 울산에서 발생한 중대재해사고는 총 16건. 이로 인해 17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재해유형은 떨어짐이 8건으로 가장 많았고 끼임과 깔림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16건의 중대재해 모두 기본적인 안전조치를 하지 않거나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보건에 관한 법령상 제도 개편이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이같은 후진국형 산재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에 오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은 사업장 내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이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과의 차이점은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 주체를 사업주에서 경영책임자와 법인까지 확대했다는 점이다.
중대재해법에서 중대재해는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구분되는데, 중대산업재해는 산안법이 규정하는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전치 6개월 이상 부상자가 2명 이상 나올 경우를 말한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한 원료나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대중교통수단의 결함으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전치 2개월 이상의 부상자가 10명 이상 나오는 경우에 해당한다.
특히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노력이 미흡한 상태에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징역과 벌금을 동시에 부과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부상이나 질병 발생시 사업주에게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정작 당사자는 혼란·우려
하지만 법 시행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경영계와 노동계는 기대보다는 우려하거나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적정한’ 혹은 ‘합리적’ 같은 불명확한 법률규정이 곳곳에 있어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처벌을 피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기업들이 다수다.
일례로 중대재해법 시행령에는 상시근로자 수 500인 이상 사업이나 사업장에 안전·보건 업무 관리 전담조직 설치를 규정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구성원 자격이나 조직 규모는 제시하지 않았다. 고용부가 배포한 해설서에서도 “‘전담조직 구성원’은 ‘2인 이상’이어야 하되 구체적인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총괄·관리하는 조직의 인원, 자격 등 구성 방법을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사업 또는 사업장 특성, 규모를 고려해 ‘합리적’ 인원으로 구성된 조직을 둬야 한다”고 모호하게 해석하고 있다.
또 처벌의 대상이 되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에서 ‘경영책임자 등’의 의미와 범위도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대재해법에서는 ‘경영책임자 등’을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의 기준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또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의무를 명시한 ‘적정한’ 조직과 인력, 예산 등이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하는지도 명쾌하지 않다.
반면 노동계는 법 적용에 대한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고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적용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통계상으로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유예된 소규모 사업장에서만 70%가 넘는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며 법 시행에 따른 사각지대가 존재해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게다가 직업성 질병에 대한 인정 범위가 좁고,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안전관리책임자를 미리 선임하거나 바지사장을 내세우는 꼼수,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되지 않는 점을 악용해 사업장 쪼개기 등의 법망을 피하는 꼼수를 막기 위한 장치가 없다고 지적한다. 노동계에서도 적용 대상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세홍기자 aqwe0812@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