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합니다. 고객님.” 소비자들은 이 구호에 현혹되어 마치 자신이 황제라도 된 듯이 종업원들에게 감정노동을 시킨다. 빅 데이터 보유자나 플랫폼기업은 소비자들의 행태를 유심히 연구하고 있다. 경제학자는 소비현상을 한계효용이론(Utility-value theory)과 현시적 선호이론(顯示的選好理論)등으로 설명한다. 과연 소비자들은 소비자주권을 인식하고 공급자와 경쟁하고 있을까.
공급자들은 기술을 혁신하고 플랫폼을 만들어 매수자를 유인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공급자들이 만들어 놓은 시장에 부응하는 행동을 할 뿐이다. 특히,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사회에 있어 이른 바 부합계약(정형화된 약정을 하는 형태의 계약)이 일반화 되고 있어 소비자의 선택의 폭은 지극히 좁다. 소비자가 물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가 제공하는 브랜드에 소비감정이 반응할 뿐. 주거지까지 상표를 붙여야 하는 시대이니 말이다.
공급자들은 상공회의소와 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제단체를 통해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또, 공급자들은 세대를 이어가며 경영권과 자산을 물려주어 영속성을 확보한다. 소비자들도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소비자운동을 펼치고 있기는 하다. 일부의 경우 권익보호가 있지만 그래도 공급자들을 따라가지 못한다. 공급자들이 시장지배기술과 능력을 혁신시키고 있음에 반하여 소비자들은 유기적인 조직에 의하기 보다는 공급자가 만든 유행을 따라 단편적인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공급자들은 어린이를 노리며 아이돌그룹 광고를 내 보내기도 하고, 효도상품이라면서 노인들의 눈을 어지럽힌다. 소비자들은 어린이의 간절한 소망도 겁나고 불효자의 불명예도 무섭다. 소비자는 자신의 기호와 유사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지 자신의 기호대로 공급할 수 없다. 여러분이 공급자에게 1000만원 짜리 소형컨버터벌 픽업이나 2G의 월 사용료 2000원의 휴대전화를 주문한들 공급자가 쳐다 보기나 하겠는가.
용역은 어떤가. 먼저 공공영역의 서비스는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있어 다행이다. 민간부문에서도 다양한 서비스 플랫폼이 성업중이다. 모든 영역에서 선진화된 것은 아니다. 정말 문제인 것은 언론과 정치 서비스 품질이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소비자는 가짜뉴스와 팩트 그리고 논평의 구분을 못하기 일쑤다. 뉴스 공급자는 대립과 반목의 메시지를 공급하여 광고수입을 취득한다. 언론학자의 말에 따르면 증오의 뉴스가 희망과 유대의 경우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한다고 한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정치공급자는 귀중한 주권자의 한 표를 노리면서 정치공학에 기반한 세대간, 성별간, 지역간 및 이념간 갈등을 부추긴다. 국민에게 영향을 전혀 없다면 댓글부대와 프레임정치가 왜 있겠는가. 소비공학을 모르는 국민은 국가총의(國家總意)는 다 잊고 정책과 인물 대신에 분노와 증오만 소비한다. 정치소비의 선진성을 확보할 백년대계가 긴요하다.
합리적 소비자로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 사유와 성찰이 빈곤한 소비자가 휘둘리는 말초적인 소비에서 능동적 통찰로 건전한 소비를 할 방법은 없는가. 호연지기를 기르며 수련하기는커녕 자극적인 미디어 문화에 종속되어 가는 세태를 어쩔 것인가. 두꺼운 책보다 요약된 글과 만화의 접근성의 증대를 가독성현상으로 치부하고만 있을 것인가. 이른바 ‘나 때에는 말이야’하는 것은 구닥다리이다. 변화하는 공급환경에 적응하는 철학이 있는 소비세상을 만들자. 그러자면 가치있는 소비와 건전한 공급의 조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물론 공급자도 존중되어야 한다. 바야흐로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시대가 되었다. 매매(賣買)라는 글자를 유심히 보자. 파는(賣) 사람(人)이 사는(買) 놈(者)보다 선비(士)이다.
전상귀 법무법인현재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