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주년 3·1절]광복회 본부 ‘상덕태상회’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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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주년 3·1절]광복회 본부 ‘상덕태상회’ 찾았다
  • 홍영진 기자
  • 승인 2022.02.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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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 의사의 활동을 다룬(빨간 테두리) 민주중보(1946년 1월3일자).
박상진 의사의 활동을 다룬(빨간 테두리) 민주중보(1946년 1월3일자).

울산독립운동가 고 박상진 광복회 총사령은 대구에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를 설립, 일제의 눈을 피해 광복회 본부 겸 국내외 연락거점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1912~1916년 운영된 것으로만 알려졌을 뿐 상회의 실물을 보여주는 사료는 찾기 어려웠다.

제103주년 삼일절을 앞두고 ‘상덕태상회’의 실물 사진이 발견됐다. 그 속에는 광복회원으로 추측되는 이들과 함께 찍힌 박상진 의사의 새로운 모습도 확인된다. 이현호 우신고등학교 교사가 고신문에서 이를 찾아낸 뒤 본보에 제보했다.

사진은 부산지역 일간 민주중보(民主衆報·1945~1949년) 1946년 1월3일자에 게재됐다. ‘민족운동의 선열과 그 유족’ ‘조국광복코저 순국한 고 박 열사 전모’ 제하의 이 기사는 해방 이후 독립투사 박상진을 상세하게 다룬 최초의 언론 보도로 추정된다.

당시 백탁기 기자는 울산군 농소면 송정리에 살고있던 박상진 의사의 아들 응수를 직접 찾아가 취재한 뒤, 유족이 보관하고 있던 사진까지 받아서 기사에 실었다.

한 장은 익히 알려 진 박의사의 얼굴사진이다. 나머지 한 장은 박의사를 포함한 6명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세로 간판 ‘상덕태상회’를 중심으로 좌우 3명씩 앉거나 선 채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박의사는 간판 바로 왼쪽에 자리한다. 기사는 ‘총사령 고 박상진씨와 광복회 군사연락 기관인 상덕태상회’라는 설명으로 마무리된다.

이 기사는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박상진의 새로운 유언내용도 알려준다. 박상진은 아들 응수에게 “사형은 불가피하다. 강도 일본을 섬멸하지 못한 것이 유감일 뿐”이라며 “정신차려 살라”고 당부했다. 동료 수감자에게는 “죽어도 대한, 살아도 대한을 위하라. 자기 한사람, 한가족만 살려고 민족전체를 죽여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현호 교사는 “박상진의사 순국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으로서 옛 자료를 찾던 중 이 기사를 접했다. 막연했던 광복회 거점공간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다. 박의사의 서훈등급에 도움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박의사의 증손 박중훈(울산북구향토사연구소장)씨는 “광복 후 찾아온 신문기자(신문명은 기억하지 못함)에게 (사진을)빌려준 뒤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중보 원본은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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