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태평성대와 정치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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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태평성대와 정치과잉
  • 경상일보
  • 승인 2022.03.0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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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호수 동서대학교 교학부총장

앞날을 걱정하는 건 태평성대에나 할 짓이다. 전시에는 그날 안 죽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걸 모르면 그걸 아는 자의 짐이 되기에 십상이다. 소설가 박완서의 자전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 나오는 구절이다. 전쟁과 평화에 대해 이보다 더 적나라한 표현이 있을까 싶다. 우리 역사상 태평성대 기간은 얼마나 될까. 유난히도 외침과 내분으로 전란을 많이 겪은 한반도이다. 태평성대의 대척은 난세이고, 그 한가운데는 전쟁이 있다. 유사 이래 세계 곳곳에 분규가 끊이질 않았지만, 작금 러시아의 침공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처참하고 또 전 세계적으로도 위험하기 짝이 없다. 전쟁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얘기되지만, 그 촉발은 국가 지도자의 세계관과 통치관에 영향받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전체주의 국가에서와 같은 정치과잉이 지도자에 보다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예나 지금이나 태평성대는 지도자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노자의 도덕경 17장에 훌륭한 지도자 또는 통치자의 4가지 등급을 소개하고 있다. 가장 훌륭한 통치는 아래에서 통치자가 있다는 사실만 안다. 그다음 단계에서는 통치자를 친밀하게 느끼며 그 통치자를 찬미한다. 그보다 더 낮은 단계에서는 통치자를 두려워한다. 가장 낮은 단계의 통치는 백성들이 통치자를 비웃는 단계다. 당연히 백성이 통치자를 무서워하거나 업신여긴다면 좋은 통치자는 아님이 분명하다. 여기서 가장 훌륭한 통치자로 치는 통치자가 있다는 사실만 느끼는 경우란 무엇인가. 지도자가 보편적이고 타당하지 않을 수 있는 이데올로기, 가치관이나 이념을 국민에게 강요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본다. 다시 말하자면 정치란 중국의 요순(堯舜)시대처럼, 정치가, 임금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최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의 현 상황에 비추어 보면 참으로 거리가 클 수밖에 없는 이상향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우리에겐 언제부턴가 통치자가 너무 가까이에 있다. 뉴스를 보면 항상 중심에 있고, 또 거기에는 편(진영)이 있고, 그래서 더욱 갈림이 생기고, 통합과 포용의 정치와는 거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정치과잉이다. 심지어 국가의 주요한 결정이나 아젠다의 설정조차도 얼마나 많이 정치적으로 이루어지는지는 헤아리기도 힘들다. 이미 정치적이라는 표현은 합리성이나 보편타당성보다는 비합리적 타협에 영향을 크게 받는 의사결정이나 방향설정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 뜻이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태평성대를 꿈꾸려면 먼저 정치를 최소화해야 한다. 언제부턴가 정치의 반대는 비정치가 아니라 합리라고 회자하고 있는 지경이다. 교육, 경제, 문화, 산업, 심지어 에너지 정책 어디 하나 정치적이지 않은 영역이 있기나 한가. 이미 수십 년간 흘러온 정치과잉 사회가 불러일으키는 미래란 생각만 해도 참담할 지경이다. 구소련의 공산주의 체제 지도자였던 흐루시초프는 ‘정치가란 강이 없는 곳에도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모든 분야에 합리성이 결여된 정치적 공약이 난무한다. 간혹 차라리 당선되더라도 공약 이행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까지도 생길 지경이다.

다시 지도자를 선출하는 시간이다. 차선이니, 차악이니 말들이 다분하다. 적어도 무서워하거나 비웃음거리가 되는 지도자를 뽑지는 말아야겠다. 아니면 우리의 지도자가 있다는 사실만 느끼게 되도록 함께 만들어가든지 말이다. 정치과잉 사회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나라의 미래 운명이 달려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새로이 시작해야 할 우리의 사명이지 않을까 싶다.

남호수 동서대학교 교학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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