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금칼럼]파리(Paris)는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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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금칼럼]파리(Paris)는 기억한다
  • 경상일보
  • 승인 2022.08.0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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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파리시청사는 건물이 아름답고 프랑스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커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 중의 하나이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렇듯이 관공서에 구호를 적은 현수막이 걸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그곳이 시청인지, 구청인지 알기도 어렵다. 그런데 거의 7월 한 달 내내 파리 시청사에는 ‘파리는 기억한다(PARIS SE SOUVIENT)’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무엇을 기억한다는 것일까. 바로 1942년 7월 16-17일에 있었던 벨디브(Vel d’Hiv) 사건이다. 2차 대전 중 프랑스 경찰이 유대인들을 체포하여 파리의 동계경륜장에 강제수용하고 이들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보내 학살되게 한 사건이다.

프랑스 입장에서 보면 역사상 가장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이고 치욕적인 역사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이 날이 되면 대통령과 총리가 참석하는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개최한다. 어두운 과거지만 이를 기억하며 희생된 사람들에게는 추모의 마음을 전하고 스스로는 역사의 과오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다짐을 하는 것이다.

파리의 기억은 과오에만 그치지 않는다. 파리에는 수많은 기억의 흔적이 있다. 바로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미테랑 도서관으로 불리고, 우리도 잘 아는 복합문화공간인 퐁피두센터는 아예 대통령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무수히 많은 길과 공원 그리고 광장의 명칭에 프랑스 관련 성인(聖人), 문화예술인, 작가, 학자, 정치인들의 이름이 사용되고 있다. 파리의 유명한 오페라극장은 오페라 가르니에로 불린다. 가르니에(Garnier)는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이다. 로마시대 사용된 원형경기장으로 들어가는 짧은 길은 이곳을 발굴한 고고학자 바커(Vacquer)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작가 에밀 졸라(Emile Zola) 길이 시작되는 지점에는 그의 얼굴과 글이 새겨진 작은 공원이 있다.

과거를 기억하고 또 국가와 사회 그리고 인류의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을 기억하려는 노력은 전형적인 문명국의 모습이다. 우리의 경우를 보자. 울산에도 기억해야 하는 사건이나 인물들이 꽤 있다. 과거 울산은 환경오염 피해가 많았다. 지금 삼산지역은 울산의 신도심이 되었지만, 과거 환경피해로 인한 분쟁이 최초로 발생한 지역으로서 말하자면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발상지이다. 삼산지역의 작은 공원에 이런 표시하나 설치하면 어떨까. ‘온산병’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치부이기는 하지만 공해로 인한 피해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떤 형태로든 기억될 필요가 있다.

울산에는 기억해야 할 인물들도 많다. 박상진 호수공원, 이예로 등은 아주 좋은 예다. 이를 더욱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 최현배로도 가능할 것이고, 오영수 공원도 가능하다. 반구대 암각화를 최초로 발견한 문명대교수도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시민장까지 치른 심완구 전 시장의 이름을 딴 도로나 공원을 만드는 것도 주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또한 울산의 소방관, 경찰관, 시민들 중에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추모하는 공원이나 길을 만드는 것에는 더더욱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지금 젊은이들은 삼산의 예전 모습을 알지 못한다. 그곳에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울산을 발전시키고 누가 시민들을 위해 희생했는지도 시간이 지나가면 다 잊히고 만다. 문화예술인에 대한 존경이 문화를 발전시키며, 의인(義人)들에 대한 최고의 예우는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것이다. 또한 반성이 없으면 과오는 되풀이 된다. 존경과 반성은 기억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기억은 역사발전의 필요조건이다.

‘파리의 기억’도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벨디브 사건을 프랑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53년이 지난 1995년이다. 에밀졸라 공원을 만드는 데에도 정치적, 사회적 논란이 심해서 십수년이 소요되었다. ‘울산의 기억’ 역시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사회로 가는 필수작업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진행해 보았으면 한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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