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72)]세상의 중심, 이스파한 이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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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72)]세상의 중심, 이스파한 이맘 광장
  • 경상일보
  • 승인 2022.08.1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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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성들의 일상과 통치자의 의례가 결합된 복합공간인 이맘광장은 17세기에 이미 현대적 광장의 사회학적 기능을 구현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시 중심에는 광장을 두게 마련이다. 광장은 시민들이 모여 교류와 소통을 이루고 의식을 진행하는 사회적 공간이다. 그곳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독특한 사회체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아고라를 만들어 민주주의를 탄생시켰고, 로마제국의 포럼은 공화정의 산실이 되었다. 베니스의 산 마르코 광장은 상업과 무역을 진흥시켰고,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은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신성 도시의 상징이었다.

이스파한의 중심에서도 놀랄 만큼 독특한 광장을 볼 수 있다. 바로 사파비 왕조 시기에 만들어진 이맘 광장이다. 본래 이곳은 사파비 왕조의 정궁(Ali Qapo)앞 궁원으로서 낙쉐자한(Naqsh-e Jahan)정원이라고 불렀다. 그 이름은 ‘세상의 모형(Pattern of the World)’이라는 뜻이다. 이스파한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려고 했던 사파비 왕들의 의도가 담겨있다. 17세기 초 이곳에 거대한 아케이드가 건설되고, 정원은 광장으로 바뀌면서 이맘 광장(Imam Square)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맘 광장은 넓이 8만㎡(510×163m)에 달하는 거대한 공간이다. 서울광장(구 시청 앞 광장)의 6배가 넘는다. 크기로 보면 북경의 천안문 광장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손 꼽힌다. 거대하지만 결코 산만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엄청난 규모의 광장을 응축시키는 것은 주변을 둘러싼 아케이드다. 이 아케이드는 기존의 왕궁과 모스크를 포함하여 시민들의 바자르(시장)까지 추가한 거대한 복합건물이다. 지극히 단순한 사각형의 아케이드 건물이지만 이것을 구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본래 이 자리에는 왕궁과 2개의 모스크가 세워져 있었다. 이 세 건물의 위치가 축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이를 묶어 새로운 질서 체계로 재구축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였다. 더구나 세계의 모형이 될만한 상징성을 담아야 했다. 이 난해한 과제가 페르시아의 천재적 건축가 이스파니(Ali Akbar Esfahani)에게 주어졌다.

그는 기존 모스크의 축을 유지하면서, 세 건물의 위치와 일조량을 감안하여 새로운 광장의 축을 만들었다. 장축 방향인 동, 서면에는 궁전과 쉐이크 모스크를 마주 보게 배치하고, 남면에 있는 로얄 모스크는 북면에 바자르의 정문(Qeysariyeh Portal of Bazaar)과 마주 보도록 계획한 것이다. 이로써 광장의 내부에서는 사방 각 변 중앙에 4개의 이반(Ivan: 대문형 건물)이 만들어졌다. 마치 모스크의 중정처럼 디자인한 것이다.

모스크는 키블라(메카 방향) 축을 엄격하게 지켜야 했다. 이에 아케이드 축과 모스크 건물의 축이 45도 틀어진 것을 아케이드 안에서 결합시켜야 했다. 건축가는 모스크의 진입공간에 삼각형 공간을 사용하여 두 개의 다른 축을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광장 안에서는 전혀 이질감을 느낄수 없도록 해결방안을 찾아낸 건축가의 탁월한 발상이다.

아케이드는 2층으로서 통로를 따라 광장을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만들었다. 본래 이 아케이드는 상점이나 공공공간, 왕궁을 위한 시설들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광장에는 12개의 문이 있었는데, 과거의 정문은 바자르 정문으로서 초창 당시부터 지금까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다. 광장에는 정원을 꾸몄다. 대지를 격자형으로 구획하여 잔디밭을 조성했고, 중심에는 역시 사각형의 수조와 분수를 설치했다. 페르시아 인들이 ‘낙원(paradisa)’이라고 불렀던 페르시아식 정원이다.

사파비 시대에는 1주일에 하루씩 이곳에 천막이 설치되고 시장이 열렸다고 한다. 궁궐 앞마당에 시장을 설치한 셈이다. 밤에는 이곳에서 폴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압바스 1세 왕은 유능한 폴로선수로서 직접 경기에 참가했다고 알려진다. 알리 카포 궁전 3층에는 왕이 광장을 내려다보며 폴로 경기를 관람했던 베란다가 마련되어 있다.

이맘 광장은 현대에서 광장이 갖는 사회학적 의미와 기능을 이미 17세기에 구현한 것이다.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함께 어울리는 민주적 공간이며, 백성들의 일상과 통치자의 의례가 결합된 복합공간이며, 시장과 행정과 경기장과 군사적 기능이 함께 할 수 있는 가변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천안문 광장을 비롯한 절대 왕정의 권위적 형식과 대비되는 성격이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광장의 서쪽 변 중앙에 사파비 왕조의 정궁인 알리 카포 궁전(A‘li Qapo Palace)이 서 있다. 압바스 왕은 원래의 궁전을 6층으로 증축했다. 증축된 궁전의 높이가 48m, 당시 이란에서는 초고층 건물이었다. 하지만 거대한 광장과 아케이드에 비하면 왜소해 보인다. 통상적으로 왕궁이 가지고 있는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건축 요소는 찾아보기 어렵다. 위압적인 성벽도, 거창한 성문도 없이, 시장 한복판에 벌거벗고 서 있는 모습이다.

알리 카포의 진수를 보려면 3층에서 시작하는 베란다에 올라야 한다. 베란다라고는 하지만 천정 높이가 28m에 이르는 거대한 공간이다. 18개의 목조 기둥이 지탱하는 목조 천정과 지붕으로 덮었다. 늘씬하고 섬세한 장식의 목재 기둥이 장쾌한 발코니 공간을 만들었다. 사파비 시대에는 기둥을 유리로 둘러싸, 마치 지붕이 공중에 떠 있는 효과를 주었다고 한다. 페르시아 건축의 진수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이맘 광장은 거대하지만 아름답고, 기하학적 규칙성을 갖지만 다채로우며, 지배자와 백성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도시의 안마당이다. 군주는 이곳에서 백성들의 삶을 조망했을 것이다. 여민락(與民樂), 사파비 왕들의 진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이맘 광장에는 백성과 함께하는 군주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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