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문화지체 그리고 문화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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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문화지체 그리고 문화성숙
  • 경상일보
  • 승인 2022.08.1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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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 관장

우리나라는 근대사에서 유례가 없는 압축성장을 했다. 전 세계를 통틀어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는 아마도 우리가 유일할 것이다. 1970년대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약 300달러에서 2020년 약 3만2000달러이니 어림잡아 50년 동안 110배의 경제성장을 한 것이다. 이렇듯 우리사회는 엄청난 속도로 쉴 새 없이 달려왔다.

지금의 MZ세대는 상상도 못하겠지만 구세대인 내가 국민(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보리혼식, 폐품정리, 채변검사, 심지어 ‘쥐 잡는 날’ 행사가 국가차원으로 실시됐다. 한마디로 과거 개발도상국 한국은 아주 못 살았다는 이야기다.

하나, 대한민국은 어떻게 빈국에서 부국으로 광속성장을 할 수 있었을까?

필자는 이러한 경제성장의 원인에 대한 흥미로운 논문을 본적이 있었다. 모 국가산하 경제연구소 나온 이 자료에는 3가지 요소를 그 동력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전 국민의 엄청난 근면성, 전 국민의 초현실적 교육열, 독재적 리더십이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인은 근면성, 교육수준, 정부리더십이 타 국가에 비해 매우 월등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연구에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압축성장의 어두운 면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끊임없는 부의 갈증과 함께 품위와 품격이 상실된 사회 즉, 한국은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부재한 사회라는 것이다. 조금 더 거칠게 이야기한다면 한국은 나라 자체가 갑자기 잘 살게 된 졸부국가이며 배려와 공존이 아닌 경쟁과 독점을 일반화시켜서 다양한 사회적 충돌관계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 현재 한국의 GNP(국민총생산량)는 세계 12위이다. 모 경제학자는 디지털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이러한 한국경제의 차별적 특성을 약 세 가지로 정의했다. 정확성을 수반한 속도성, 성실성을 수반한 목적지향성, 모방성을 수반한 창조성이다.

솔직히 과거, 한국은 속도성, 목적지향성, 모방성의 분위기가 팽배한 사회였다. 이는 단기간에 한국경제를 세계 10위권의 반열에 올리는데 매우 효과적인 전략적 가치였지만 그에 대한 사회적 손실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이미 와우아파트,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등 말도 안 되는 사건, 사고들을 경험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접전지인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역동적인 환경변화에 순발력 있게 적응하며 빠르게 진보해왔다. 이제 우리는 ‘4차 혁명’이라 불리는 새로운 사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미 대한민국은 이러한 변화에 선도적으로 대응하며 디지털시대의 경제강국이 되기 위해 속도성, 성실성, 모방성에 더해 정확성, 성실성, 창조성의 가치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대충대충, 빨리빨리의 사회는 보다 섬세하고 유동적인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더 나은 미래로 진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미국의 사회학자 월리엄 필딩 오그본 (William Fielding Ogbum)은 그의 저서 <사회변동론>에서 ‘문화지체’ 이론을 언급했다. 문화지체(文化遲滯, cultural lag)란, 비물질적 문화가 물질적 문화를 따라가지 못해 나타나는 부정적인 사회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 물질문화는 기술발달로 인한 모든 유형의 산물을 말하는 것이고, 비물질문화는 사람의 생활방식부터 제도적인 부분까지 모든 무형의 사고를 아우르는 것이다.

우리는 성장했다. 다소 과정보다는 결과에만 중심을 두며 쉴 새 없이 마구 달려왔지만 이제는 잠깐의 쉼과 함께 뒤를 돌아 볼 때다. 우리 사회가 놓쳤던 혹은 부재했던 부분들을 다시금 채워가며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사회를 만들어보자. 그러면 ‘문화지체’는 사라지고 문화성숙과 함께 이해와 배려, 공존과 상생의 미래사회가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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