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하늘이 내려 준 소명, 그 이름은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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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하늘이 내려 준 소명, 그 이름은 간호사
  • 경상일보
  • 승인 2022.08.1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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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경 전 울산시티병원 간호과장

‘간호’의 한자 뜻을 보면 볼 ‘간’에 지킬 ‘호’로 ‘보고 지킨다’라는 의미로 ‘돌봄’의 뜻을 담고 있다. 지금도 난 이 말을 종종 곱씹어 보곤 한다. 누군가를 돌보고, 도움을 주고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간호사란 직업이 그래서 난 참 좋다. 간호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임상간호사로 일하면서 힘들었지만, 간호사로 하늘이 내려준 소명을 다하는 일은 내게는 큰 기쁨이었다. 환자에게 좋은 간호사가 되려고 밤을 새워 공부한 적도 있었고 간호사의 위상을 높이는 간호사가 되고자 치유의 현장에서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병원 현장은 참 만만치가 않았다. 신규 간호사 때는 신규라 힘들었고 중간 관리자가 됐을 때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간호사의 일이 너무 힘들어서 사직하겠다는 후배들을 붙잡고 격려하며 설득하고, 근무조건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려고 상의하고 협의하면서 환자를 돌보는 일들도 계속해 나가야 했다. 병원 간호사로 그렇게 30년을 지내면서 간호와 관련된 일에 달인이 될 것만 같았는데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고 자꾸만 지쳐 가는 내 모습을 봐야 했다. 결국 임상을 떠나면서도 그동안 간호사로 열심히 일했다는 뿌듯한 자부심보다 간호사라는 직업인으로서 패배감이 더 많이 밀려왔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병원을 사직한 후 노인 간호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요양병원에 입사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노인 간호가 두렵긴 했지만, 용기를 내어 시작한 노인 병동 간호의 일을 막 시작 했을 때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병동의 업무는 하루하루가 폭탄을 맞은 것 같았다. 이어지는 행정명령에 따라 감염관리를 시행했다. 매일 이루어지던 가족들의 면회가 금지되면서 보호자들에게 전화로 하루의 안부를 전하고 안심시켜야 했다. 또 계속되는 백신 접종 업무로 정말 일이 끝이 없었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갑자기 컨디션이 변하는 어르신들이 가족들을 보지 못하고 임종하실 때였다. 어르신들이 얼마나 사랑하는 가족을 보고 싶었을까. 사랑하는 아내, 남편, 아들, 딸들의 손을 얼마나 잡아 보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먹먹하다.

일반병원에서 30년을 일했던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요양병원의 간호 인력은 너무 열악하다. 어르신들의 가장 기본적인 대소변, 목욕, 식사 등이 우리의 손이 가지 않으면 이뤄질 수가 없다. 나의 손길이 필요한 어르신들은 너무 많은데 내 두 손은 너무 부족했다. 어르신들 손 한 번 잡아 드리고 껴안아 드리면 그렇게 행복해하신다. 출근해서 어르신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고 불편한 곳을 확인하고 간호사실로 돌아오면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날들이 허다했다. 임상간호사로 환자들을 마음 놓고 간호할 수 있는 제도적인 방침과 간호법이 속히 마련되어지기를 바란다.

갈수록 노령인구는 증가하고 있고 그분들에게는 돌봄이 절실히 필요하다. 방문간호제도나 재가의료서비스가 확대된다면 꼭 요양병원에 입원하지 않아도 집에서 가족들과 지낼 수 있다. 어느새인가 나이 들어 아프면 요양병원에 입원해야 하고 거기서 삶을 마감하는 것이 요즘 사람들 말로 루틴이 되어버린 것 같다. 요양병원 간호사였고 파킨슨병으로 투병하고 있는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셔다 놓은 며느리로서 요양병원의 현실을 생각하면 자꾸만 가슴이 저려온다. 요양병원 간호사로 어르신들을 돌보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현실이 두렵고 자신감이 없어진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아직 진행 중인 상황인 지금, 임상 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간호사들에게도,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과 어르신들에게도 간호법이 하루빨리 제정되어 더 큰 위로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장치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이혜경 전 울산시티병원 간호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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