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 만에 첫 매미 울음 소리를 들을 적만치 반가운 일은 없다. 매미가 울어대면 비로소 나의 여름은 시작된다. 매미 소리는 어린 시절, 여름의 나를 만나게 해준다.
나는 여름방학 내내 느티나무 아래 앉아 매미 소리를 들었다. 씩씩한 군악대처럼 맹렬히 울다 어느 순간 조용해지는 그 잠깐의 정적이 좋았다. 숨을 멈추고 기다리면 이내 또 일제히 청량한 여름 빛깔에 어울리는 소리를 쏟아 낸다.
산촌에서 보내는 여름방학은 참 단조롭고 무료했지만, 여름을 오감으로 만끽하며 나는 옹골차게 여물어 갔다. 태양이 어루만지는 듯한 뜨거운 열기와 끝없이 펼쳐진 초록 세상의 풍경, 소나기 내린 후 짙어진 쌉싸름한 풀 내음, 콩국수와 미숫가루의 슴슴한 여름 맛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한여름 밤의 꿈같던 방학이 사라져도 손톱에 물들인 봉숭아 꽃물은 찬 바람이 불 때까지 뜨거웠던 계절의 기운을 전해주었다. 여름을 대하는 나름의 취향이 생긴 건 다 그 시절 덕분이다. 여름의 시간들이 나를 성장하게 했다.
여름 이데아가 펼쳐지던 예전의 방학과 달리 코로나 시대의 여름 방학은 인지부조화가 크다. ‘여름’과 ‘방학’이라는 매력적인 두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설렘과 흥분, 기대감은 충만하지만, 현실의 아이들은 스마트폰 네모난 세상 속에서 여름을 난다. 아이들 사이에서 SNS로 무의미한 문장을 쓰고 끝에 ‘여름이었다’를 붙이거나 해시태그를 다는 ‘밈’이 유행이다.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도 ‘여름이었다’라는 마법 같은 문장을 쓰는 순간 아련한 행복했던 시간으로 변한다. 아이들은 자신들과 가장 닮은 계절을 맘껏 즐기지 못하는 원망을 MZ세대답게 하소연하고 있다.
몇 년 전 이탈리아 시골 마을 선생님이 내준 여름방학 숙제가 화제가 되었다. 아침에 혼자 해변 산책하기, 부끄러움 없이 춤추기, 해 뜨는 것 감상하기, 슬픈 영화 보기, 햇빛처럼 행복하고 바다처럼 길들일 수 없는 사람이 되기 등 기꺼운 마음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황홀한 숙제다. 그렇게 자신만의 여름을 살고 경험하다 보면 어느새 여름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부쩍 성장한 아이들과 신나게 지난 여름 이야기를 나누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어느새 다가온 가을에 아침저녁 찬 바람이 마중 나온다. 여름의 끝자락에 서니 마음이 허우룩하다. 처서가 지났어도 매미는 귀뚜라미와 어울려 열심히 울고 있다.
아직은, 여름! 머리보다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남은 여름 갈무리했으면 좋겠다. 하여, 당신만의 특별한 문장으로 울림 가득한 ‘#여름이었다.’를 완성해 보길 바란다.
황희선 화봉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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