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이다. 가까운 지인이 갑작스럽게 불편한 증상이 생겨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해왔다. 익숙한 상황인지라, 몇 가지 질문을 한 후 최적,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대처방안을 알려줬다. 이런 상황에 놓일 때면 울산에서는 도움을 줄 선택지가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선택의 폭이 좁아 안내하기가 편하지만, 도시의 정주여건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의료서비스 차원에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선택지가 몇 가지 없다는 말은, 울산광역시에 의료시설이 그만큼 없다는 뜻이다. 2021년 11월 기준, 울산에 등록된 병원 수는 종합병원 8개(대학병원 1개 포함), 병원 41개다. 절대적인 병원 수, 병상 수는 물론이고 인구 천 명당 병상 수, 인구수 대비 의사숫자도 광역시 중 압도적으로 최하위다. 의료기관은 초기 진료와 예방을 담당하는 1차의료기관(의원, 보건소), 입원 진료를 할 수 있는 2차의료기관(병원, 종합병원), 3년마다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하는 상급 종합병원인 3차의료기관으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구분지어 놓은 역할들이 사실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타지에 비해 절대적인 양이 부족한데다 상급병원의 전문 인력 또한 부족해 많은 시민들이 전문적 치료를 위해 타지에 장거리 진료를 받으러 가는 게 울산의 현실이다.
울산에 이렇게 의료시설이 부족한 이유는 첫째, 의료 인력 양성과 수급 등 지역 의료 환경의 문제이다. 의사는 전문의를 기준으로 고등학교 이후 의대 혹은 의학전문대에서 총 6~8년의 과정, 전문수련과정 5년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 동안 주변에 많은 인적, 물적 요소들이 형성이 되기 때문에, 많은 의사들은 출신 고등학교, 대학교, 수련병원이 있었던 지역을 향후 생활권으로 결정해 근무하게 된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울산은 광역시 중 의대 진학률이 가장 낮을 뿐 아니라, 지역 소재의 의대 정원은 40명, 전문의 수련이 가능한 대학병원은 1개뿐이다. 이렇게 지역과 연관된 의사 숫자 자체가 적다보니 상당수의 의사가 타지에서 공급되어야 해 울산의 의사 수급은 타 지역에 비해 열악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는 바로 의료수가이다. 경영인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병원공급이 타 지역보다 적다면, 당연히 울산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최적의 도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 데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가 없는 의료수가 문제가 있다. 이유는 ‘본인부담금’이라는 눈에 보이는 금액 뒤에 ‘의료수가’라는 것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새로 생기는 많은 의원과 병원들은 전문 ‘의료’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서비스를 위한 ‘편의’를 제공하는 장소가 돼버렸다. 의사 뿐 아니라 의료경영인, 간호사, 물리치료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등 수많은 직군이 ‘의료수가’와 연결되어 있지만, 현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도, 관심 있는 사람도 없다. 이것은 비단 울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다. 때문에 통계상에 나타나는 병원 숫자, 의사 숫자의 상당수가 의미 없는 숫자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이따금씩 울산공공의료원 설립 추진 소식이 들려온다. 관심이 없는 이도 있지만, 많은 기대를 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의료분야만큼은 공공기관보다 이윤을 위한 사립기관의 능률이 월등히 높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해외의 다양한 사례와 필자가 직접 군의관과 공중보건의를 경험하면서 보고 겪은 사실만 봐도 공공의료의 한계는 너무나 분명하다. 공공의료가 지금 우리 앞의 의료환경을 현저히 개선해줄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없지 않지만, 그렇더라도 현재 울산지역 사회에서 추진되고 있는 의료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이 긍정적인 결과로 나타날 것만은 분명하다. 울산시민들의 구체적인 관심, 관계자들의 실질적인 노력과 함께 정부가 의료수가를 조금만 개선한다면 울산시도 다른 광역시에 뒤지지 않는 의료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며, 더불어 의미 없는 통계 숫자도 의미 있는 숫자로 바뀔 것이다.
이성민 외과전문의 본보 차세대CEO아카데미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