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유가 변동성과 미국정부의 시장개입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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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유가 변동성과 미국정부의 시장개입 가능성
  • 경상일보
  • 승인 2022.08.2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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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희 미국변호사

“최근 유가는 투자대상 자산가치의 변동에서 발생하는 차익으로 먹고 사는 헤지펀드 트레이더들 조차 감당하지 못할 만큼 그 변동성이 극심해졌다.”

지난 주 한 외신에서 내 주목을 끌었던 기사의 일부이다. 지난 3월, 8년 만에 다시 도래한 유가 100달러 시대에 관한 글의 말미에서 썼던 것처럼 유가는 전문기관조차 전망이 엇갈릴 만큼 예측하기 어려운 속성을 갖는데, 위에서 인용한 글은 그 변동 정도가 최근 들어 더 심해졌음을 가리킨다.

유가 변동성의 심화가 가져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자산 운용업 뿐 아니라 한 나라 안과 밖의 경제 전반에 걸쳐 넓고 오래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는 수입에 절대 의존해 석유를 수급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2018년 이후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된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휘발유 소매가가 갤런 당 5달러를 넘었던 지난 6월 인플레이션 공포가 확산되자 미국 정부가 1억 배럴이 넘는 전략비축유(SPR)를 방출한 것도 그 때문이다.

유가 변동성으로부터 시장 안정성을 방어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동원하는 미국 정부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관련 위험이 이렇게 크다면 지금처럼 단순히 전략비축유를 소극적·후행적으로 방출할 것이 아니라 그냥 미국 정부가 처음부터 석유·가스사업에 직접 참여하면 되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독자들로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에서 정부가 시장 가격결정에 직접당사자로 참여하겠다는 위의 발상이 터무니없게 들릴지 모르겠다.

맞다. 자유방임 자본주의(Laissez-faire capitalism)의 기조상 정부의 직접적인 시장개입은 어느 모로 보나 이질적이다.

그런데 실용적인 필요가 있는 부문에 미국 정부가 적극 개입했던 사례는 의외로 드물지 않다. 당장 이달 9일부로 발효된 반도체 지원법(CHIPS Act)만 보더라도 미국 내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에 대한 보조금 명목의 정부 투자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고, 16일 시행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또한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 대응산업에 3690억 달러를 투자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등 그 취지와 방향이 같다. 민간 개발의 역사가 깊기는 하나, 화석연료에 기반한 에너지 산업이라고 안 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정부의 임무를 구체화한 제안도 시장에서는 언급되고 있는데, 석유를 미리 구입해 나중에 되파는 현행의 단순 대응에서 벗어나 연방정부 소유 토지상에 시추가 완결되지 않은 유정을 매입해 정부가 생산 유전의 소유주가 되어 원유 공급량을 늘리는 방안과, 국영정유공사(National Refining Company)를 설립해 운영함으로써 석유제품 가격을 아예 처음부터 낮춰 거래함으로써 에너지 시장을 안정화 시키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가격 정책 시행과 시장개입을 총괄할 정부 부처(에너지 안보청)를 설치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참신하다 못해 과격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 방안들이 구상되는 이유는 지금 진행 중인 인플레이션과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구사할 수 있는 기존 정책이 갖는 효과의 한계가 심각하고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국 에너지 시장 내 수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부의 존재감이 미미하다 보니 바이든 대통령은 자국의 현안 타개를 위해 타국인 사우디아라비아나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석유 증산을 ‘요청’해야 했다. 이 이벤트는 두 나라 모두 국영 석유회사들을 통해 정부가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강력한 정책 집행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에너지 시장에 다시 한 번 충격을 줄 계절 변수, 겨울이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다. 넘쳐나는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시장에 가져올 리스크를 미국 정부가 어떤 논리와 방식으로 감당해 나갈지 주목된다.

이준희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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