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순신 장군과 일촌 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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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순신 장군과 일촌 맺기
  • 경상일보
  • 승인 2022.08.3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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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육 울산시 동구 부구청장

임진왜란 이야기의 꽃은 역시 충무공의 전승 신화다. 휴가 때 본 영화 <한산>이 아직 눈에 선하다. 거북선과 신의 열두 척으로 대변되는 한산도, 명량, 노량 해전을 빼고서는 왜란 극복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줄곧 내가 살아 온 합천, 진주, 울산에 이순신 장군 전적지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최근 향토사를 조금씩 더 들여다보니 장군과의 인연이 살짝이나마 묻어 있는 것이 보여 작은 위로가 된다.

나는 진주에서 중·고교를 나왔다. 진주성ㆍ국립진주박물관을 가까이에서 보며 자랐다. 지금은 진주대첩광장을 크게 조성하고 있어 시민들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장군은 통제사 시절(을미년 8월23일) 진주성에 들러 체찰사 이원익과 작전을 논의하고, 김응서 장군과 함께 촉석루에 이르러 대첩에서 숨진 장병들을 생각하며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사천과 통영, 남해가 바로 앞이라 수영(水營)과 선소(船所)가 없었을 뿐 진주는 이순신 장군과 일촌 맺기가 어렵지 않다.

한편 나는 합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녔다. 합천은 <정감록>에서 말하는 십승지(十勝地) 중 하나가 가야산에 있을 만큼 워낙 내륙이라 이순신 장군 유적지가 없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우연히 장군이 고향마을 근처를 지나며 홰나무정자(괴정 槐亭)에서 잠시 쉬었고, 관사에서 하루를 묵었다는 향토사 자료를 인터넷에서 발견했다. 이후 <난중일기>(정유년 6월2일)를 확인해 보니 더 많은 스토리가 있었다. 그래서 명절에 고향집에 가는 길에 바로 그 쉼터(삼가면 두모리)를 들러 보았더니 군청에서도 안내판을 설치해 두고 있었다. 장군이 내륙 깊숙한 합천까지 간 이유는 백의종군 시기 권율 도원수의 진영이 있는 합천 초계에 가야했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공의 일기를 보면 당시 장군은 말이 백의종군이지 합천에서도 사실상 2인자 역할을 하였던 듯하다.

울산은 이순신 장군과 일촌 맺기가 더 어렵다. 울산·경주 동해안과 울산항에도 적선이 상당수 있었고 남목 출신 서인충 장군의 지휘로 해전이 자주 벌어지긴 했단다. 하지만 남해에서의 해전 규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재미있게도 장군이 합천에 있을 때 경상우병사 김응서와 작전 편지를 주고받은 기록이 보인다. 장군은 이때 울산과 경주, 서생포 상황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응서는 다음해 권율을 도와 1차 도산성전투에 참전했고, 이어 2차 도산성전투를 이끌었던 장수이다. 사실 김응서는 경솔한 행동으로 처벌을 받기도 했고, 고니시와 요시라의 반간계에 속아 이순신 장군이 고초를 겪게 되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하여 비판이 없지 않다. 그런데 <난중일기>에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한 내용은 있어도 자신이 겪은 고초에 대해 김응서를 원망한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이순신 장군이 직접 울산에 오지는 못했으나 전우였던 이운룡과 선거이 장군이 왔다. 이운룡 장군은 옥포만호이던 당시 임란 최초의 승리를 거둔 옥포해전 선봉장이었다. 그런 그가 경상좌수사가 되어 1차 도산성전투에 참전해 서생포에 주둔해 있던 적군을 견제했다. 전후에는 선무공신(3등)이 되었다. 선거이 장군은 이순신 장군과 동갑으로 여진족과의 녹둔도전투와 한산도대첩을 함께 치르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이후 권율을 도와 행주대첩까지 치렀지만 안타깝게도 2차 도산성전투에서 전사했다.

그러면 울산은 결국 충무공의 2촌인가? 억지스럽지만 이순신 장군 둘째 아들 이름이 울(蔚)이었다. 백의종군 시기인 정유년 5월에 장군이 열()로 고쳤는데, ‘싹이 처음 생기고 초목이 무성하게 자란다’는 뜻으로 새겼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맏아들 회()는 명량해전을 함께 했고, 셋째 면()은 아산에서 전사했다. 그런데 , 蔚, 모두 크게 보면 과 비슷한 뜻이다. 한편 조선시대 개운포와 도산성 근처에는 전선을 건조하던 선소가 있었다고 한다. 귀선(龜船)은 려말선초부터 있었던 배무이 전통이니, 어쩌면 울산에서도 거북선을 만들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1970년 정주영 회장은 울산조선소를 만들 차관을 빌리고자 영국 A&P애플도어 롱바톰 회장에게 추천서를 부탁하면서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 지폐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차관을 빌리는 것을 시작으로 어느새 이지스함을 건조했으며, 앞으로 항공모함까지 건조할 꿈을 꾸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울산은 이순신 장군과 몇 촌일까?

김상육 울산시 동구 부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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