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우의 경제옹알이(20)]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가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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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우의 경제옹알이(20)]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가 선진국이다
  • 경상일보
  • 승인 2022.09.0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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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동우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영국 리버풀에서 놀랐던 것이 하나 있었다. 공원 놀이터에 “이 놀이터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은 여기입니다”라는 내용이 표지판에 적혀 있었다. 가장 가까운 공중전화가 어디에 있다는 내용도 같이 적혀 있었던 것을 보면 꽤 오래 전에 만들어진 표지판이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으로 가장 가까운 병원을 찾고 전화를 걸면 된다. 하지만 그런 정책을 시행하는 마음이 중요한 거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아이가 다쳤을 때의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는 정책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일이 있어 영국을 떠났고, 아내는 영국 리버풀에 아이 두 명과 한 달 살기를 해야 했다. 리버풀에 살았던 이야기를 하며 아내가 말했다. “리버풀에서는 유모차를 가지고 버스를 타면 사람들이 다 비켜주고, 버스 기사가 유모차 들어간다고 크게 승객들에게 말해줘. 정말 좋아.”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다.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가 선진국이구나.

선진국의 경제적 기준은 GDP, 국내총생산이다. 하지만 선진국을 살기 좋은 나라라는 의미로 접근한다면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가 되면, 태어난 아이는 20년 동안 잘 살 수 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부모가 되었을 때, 아이를 키우며 또 20년을 잘 살 수 있다. 아이로, 그리고 부모로 40년을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중간에 있는 청년시절은 사실 어디에 살아도 좋은 시기다. 내가 만약 국적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난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를 선택할 것이다.

정치인은 측근이 원수고, 재벌은 자식이 원수라고 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식 교육은 마음대로 안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한 순간이 있고, 재벌에게 부족한 것은 돈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보낼 시간이다. 빠른 경제성장을 경험한 대한민국은 어쩌면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어떻게 하면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해볼 여유가 없었다. 아이는 그냥 크는 거라고 생각했을 법도 하다. 그리고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생각하기보다는, 편법을 써서라도 아이가 돈을 쉽게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지게 해주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는 그릇된 사고에 빠져 있는 듯도 싶다.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던 때의 일이다. MIT 대학의 피터 테민이라는 저명한 경제사학자가 세미나를 하러 왔다. MIT는 경제학도 매우 유명하다. 테민 교수는 미국의 경제성장을 이야기하며 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과거에는 우수한 미국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선생님이 되었고,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미래세대를 잘 교육시킨 것이 미국 경제성장의 근간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세미나에서 나는 테민 교수에게 질문을 했다. 여성들이 진출할 수 있는 직업군이 늘어나면서, 여성들이 법조계나, 의료계로도 진출하면서 발생하는 사회 전체적인 효율성의 증가도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이었다. 테민 교수는 현재를 위한 활동과 미래를 위한 교육의 트레이드오프(trade off)를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자신에게 두 딸이 있는데, 한 명은 변호사고, 한 명은 선생님인데, 미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누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 때는 그 대답이 반쯤은 가벼운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아이의 부모가 된 지금은 그 대답의 의미가 이해가 된다.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는 현재를 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나는 그 말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백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이 천년을 걱정한다는 말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영국 리버풀에서 아이를 키우기 좋은 나라가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한 뒤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를 키우기 좋은 나라가 되면, 태어나서 20년 그리고, 부모로 아이를 키우는 20년, 도합 40년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 그쯤 되면 백년지대계까지는 몰라도 사십년지대계까지는 살아있는 동안 명확하게 경험하게 된다. 손자까지 생각한다면, 연금을 받고 살아가는 나의 노후를 미래세대가 경제적 활동과 세금으로 부양하는 것까지 생각한다면, 정말 백년지대계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는 많이 성장했다. 곧 백 살 가까이 되는 내 아내의 외할머니는 일본식민지기에 태어났고, 해방을 맞이했고, 625전쟁을 겪었고, 고도의 경제성장을 경험했고, 민주화를 거쳐, 정보산업시대를 살고 있다. 생각해보면 정말 커다란 변화다. 그리고 그 커다란 변화에 교육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GDP의 측면에서도 매우 크게, 전 세계가 깜짝 놀랄 정도로 성장했다. 대한민국의 GDP가 갑자기 확 줄어들 확률도 있지만, 그래도 꽤 상당한 규모로 계속 유지될 확률이 높으니, GDP기준으로 당장 선진국에 드는 것은 이제 좀 적게 고민해도 될 부분일 수도 있다. 어쩌면 대한민국이 더 나아가야 할 방향은, 미래 세대가 그리고 미래 세대를 키우는 부모가 살기 좋은 나라로 가는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사는 아이들과 부모는,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업을 가지게 하기 위해 무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대학에 간 아이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아이를 낳지 않거나, 아이를 낳고 아이가 자신과 같은 쉬운 길을 가게 하기 위해 또 무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재벌은 자식이 원수라는 말에서 보이는 것처럼, 자식교육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아마 나도 부모가 재벌이었다면, 공부 열심히 안 하고, 일도 열심히 안하고, 돈 펑펑 쓰면서 편하게 살 생각을 했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가치관의 흐름이 그런 것 같기 때문이다.

황금만능주의적 가치관의 문제점은 오랫동안 지적되어 왔고, 그 폐혜는 점점 더 커지고 있지만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가치관은 황금만능주의의 해결 보다는 황금만능주의 하에서 어떻게 쉽게 돈을 더 많이 벌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듯하다. 그리고 경제사라는 학문분과의 연구결과를 보면 돈이라는 유혹에 인간이 저항하지 못하고 결국은 항복하게 됨을 일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은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내가 아닌 아이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 그것은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황금만능주의적 가치관에 저항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실질적인 방법이다. 부모라는 존재가 그렇다. 나를 위해서는 못하지만 아이를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아이 키우기 좋은 선진국을 만들자. 그러면 내 아이는 최소 40년을 진짜 선진국에서 살 수 있다.

유동우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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