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여러 문화예술 단체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자주 참석하다 보니 이경희(1932~) 작가의 수필 <현이의 연극>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초등학교 다니는 딸 현이가 출연하는 학예회 연극 공연에 갔을 때, 아무리 찾아도 딸이 보이지 않아 당황스럽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풀잎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대사 하나 없는 배역이면서 풀잎 소품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므로 적잖이 실망하였다. 그러나 현이가 집에 와서, 자신이 들고 연기하던 풀잎을 잠깐 놓쳐서 엄마가 보지 않았을까 조마조마했다는 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그는 딸이 하찮은 풀잎 연기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비록 눈에 잘 안 띄는 역을 하였지만, 현이는 풀잎으로서의 자기 역할에 충실했으며 엄마가 자기를 꼭 보아주리라는 확신 때문에 더욱 열심히 연기했고, 오히려 자기의 실수를 엄마가 보았을까 걱정을 했던 것이다.’
이 세상에는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것 같아도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 것들이 많다. 축제나 공연 같은 행사에서도 겉으로 드러난 부분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이면에 말 없는 노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서 행사가 더욱 빛나게 된다.
얼마 전 필자가 소속된 문인협회에서 개최한 <울산문학>100호 출간 기념식이나 작년 말의 ‘가을밤 문학축제’도 회원들이 발 벗고 나서서 힘을 보탰으므로 잘 진행할 수 있었다. 출연자는 물론이고 행사 스텝, 손님 안내, 심지어 관객들의 질서 있는 관람 등 필요한 장소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소홀함 없이 해 준 덕분에 무리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때 그 조직체는 빛나게 된다. 퍼즐 맞추기처럼 크고 작은 조각들을 빠짐없이 채워나가야 비로소 완성되는 인간사, 세상은 유기체와 같다. 기계가 나사나 와셔 같은 작은 부품이 하나라도 빠지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듯이 조직사회도 구성원 각자가 나름대로 제 몫을 다해야 모래알처럼 흩어지지 않고 원만하게 운영됨은 명약관화하다. 인체에서 가슴이나 허리, 팔, 다리 등과 관련된 대근육 못지않게 잔근육도 필요하고, 대동맥도 중요하지만 모세혈관(毛細血管)이나 실핏줄은 또 어떤가.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의 역할 또한 결코 사소하지 않다.
또, 작은 선행이 큰 힘이 되는 경우도 많다. 지난 폭우 때 반지하에 갇힌 사람을 시민들 도움의 손길로 구한 일, 흙탕물이 역류하는 배수구 맨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쓰레기를 치운 시민의 미담 등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누구나 선뜻 행하기 어려운 작은 실천이 모여 엄청난 긍정적 결과를 발휘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구성원 모두가 주연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이 맡은 바를 성실히 수행할 때 그는 바로 그 위치에서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단원들도 제멋대로 악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주 순서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훌륭한 하모니를 이루어낼 수 있다. 축구에서 볼이 잘 안 온다고 골키퍼가 자꾸 뛰쳐나가 상대편 골대 앞에서 서성거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드라마에도 단역과 조연이 있으며, 운동경기에는 주전 외에 후보나 수비 선수가 있고 거기에도 다 맡겨진 역할이 있다. 이로 볼 때, 인간사회는 연출가나 지휘자나 감독과 같은 리더의 힘만으로 운영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자전거 바퀴는 저 혼자 힘으로 굴러가는 줄 착각하겠지만 배후에는 동력을 발생하기 위해 힘차게 밟아야 하는 페달, 그 동력을 앞뒤로 연결해주는 체인, 움직임의 방향을 바로잡는 핸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복잡다단한 우리 세상이 잘 굴러가도록 끊임없이 에너지를 생산해 주는 저마다의 역할, ‘현이의 신나는 연극’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음에 안도한다.
권영해 시인·울산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