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면주칼럼]‘알박기’ 단상
상태바
[신면주칼럼]‘알박기’ 단상
  • 경상일보
  • 승인 2022.09.06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신면주 변호사

금방 또 추석이다. 명절의 즐거움보다 무한히 반복되는 일상의 고달픔이 묻어 나오는 말이다. 끝없는 하루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알베르 까뮈는 ‘시지프스의 신화’에 비유했다. 시지프스는 신들에 대항하다가 다시 떨어지는 바윗돌을 산의 정상까지 밀어 올리는 행위를 반복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 인간들은 시지프스적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늘 경제적인 대박의 꿈을 꾸게 된다.

대박의 원조는 조선의 봉이 김선달이다. 평양의 물장수들을 매수해 물 한 통을 퍼 나갈 때마다 자신에게 돈을 주게 하고는, 이를 본 상인에게 대동강물이 자신 소유라고 설레발쳐서 거액을 받고 팔아치웠다. 대동강물을 알박기 한 것이다. 분명 사기행각임에도 통쾌한 것은 시지프스적인 상황을 쉽게 벗어나는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개발예정지의 토지를 매입해 두었다가 시세의 수십배를 요구하는 부동산 알박기가 대박의 고전적인 수법이다. 점차 법규가 정비돼 부당이득죄와 부당이득 반환이 인정되고, 개발업자에게 매도청구권이 인정됨에 따라 알박기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 근래에 우파 집회를 이끌기로 유명한 목사의 교회가 500억원 알박기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핫’하다.

요즘은 인사 알박기가 유행이다. 새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공적인 자리는 어림잡아 7000여개가 된다고 한다. 이 자리에 대통령의 사람을 채우는 논공행상이 한창인데, 전 정권에서 임명돼 아직 임기가 남은 사람들이 물러나지를 않아 마찰을 빚고 있다. 문대통령은 임기 6개월 전부터 공공기관의 기관장급 등 수 십명의 보은 인사를 감행했고, 그 외의 전 정권 사람들도 임기를 고집하는 바람에 양측간의 인사 알박기 논쟁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정치 노선과 정책 방향이 다르니 물러나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라는 주장과 업무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위해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론적으로 엽관제(獵官制)와 임기제(任期制)의 충돌이다.

엽관제는 정파의 충성도와 기여도에 따라서 공직을 임명하는 제도로서 미국의 7대 대통령 앤두루 잭슨에 의해 확립됐다. 정실에 의해 임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개혁적인 방법이었지만, 점차 그 폐해가 많아져 직업공무원제가 도입됐고, 현재는 이를 보완하는 정도에서만 유효하다. 속칭 ‘어공’ ‘늘공’ 논란이다. 임기제는 권력으로부터 업무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임기를 보장하는 제도다. 따져보면 양측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국민의 눈에는 밥그릇 싸움이거나 전 정권의 몽니로 비춰질 뿐이다.

사실 인사 알박기는 그 역사가 길다. 미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담스는 법원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임기 종료 직전에 다수의 인사들을 판사로 임용했다. 임기종료일에 치안 판사로 임명된 매버리가 임명장을 받기도 전에,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이 취임해 바로 임명장의 송달을 중지했다. 매버리는 연방 대법원에 자신을 강제로 임명해달라는 행정집행명령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이에 응하면서 복잡한 논쟁을 거쳐 결국 사법부의 위헌 법률 심사권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소모적인 논쟁을 해결해, 업무공백을 줄이기 위해서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신사협정을 통한 정치 관례 확립이 급선무다. 대통령이 바뀌면 거의 모든 정무직이 사표를 내는 미국처럼 우리도 특별히 전문성과 중립성이 요구되는 직위를 제외하고는 임기제를 고집할 일 만은 아닌 것 같다.

알박기는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2022 개정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남침’을 빼버린 역사 알박기도 등장했다. 편리성을 볼모로 시장을 선점한 후에 가격을 올리는 ‘택시 웹’과 ‘배달 웹’도 신종 알박기 의혹을 받고 있다. 이준석 사태도 정당 민주화와 자질론으로 포장돼 있지만, 실상은 차기 공천권 알박기임을 모두 눈치채고 있다. 어쩌면 청년들의 눈에는 기성세대의 존재 자체가 알박기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추석이 또 내일 모레다. 모두 가족의 큰 사랑 속에서 둥글고 풍성한 대박의 꿈으로 시지프스적 상황 따위는 멍멍 소리로 치부하는 한가위가 되었으면 좋겠다.

신면주 변호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대형 개발로 울산 해양관광 재도약 모색
  • [기자수첩]폭염 속 무너지는 질서…여름철 도시의 민낯
  • 신입공채 돌연 중단…투자 외 지출 줄이고…생산직 권고사직…허리띠 졸라매는 울산 석유화학업계
  • 아마존·SK, 7조규모 AI데이터센터 울산에
  • 울산, 75세이상 버스 무료 교통카드 발급 순항
  • 방어진항 쓰레기로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