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벚나무가 4월을 그렇게 화려하게 수놓더니 벌써 낙엽이 떨어지고 있다. 벚나무는 꽃이 피고 난 뒤에 비로소 잎을 내밀지만 무더운 한 여름을 견디게 해준다. 그리고 9월이 되면 군데군데 노란색으로 물들어 가을이 왔음을 직감케 한다. 귀뚜라미가 가을을 알리는 대표적인 곤충이라면 벚나무는 가을을 느끼게 하는 대표적인 식물이다.
산 속 스님은 세월을 헤아리지 않고도
(山僧不解數甲子 산승불해수갑자)
낙엽 하나로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
(一葉落知天下秋 일엽낙지천하추)

이 시구는 <문록(文錄)>이라는 책에 실려 있는 당나라의 이름없는 시인의 시다. 이 시로부터 많은 시가 파생됐고, 조선시대 문인들도 이 시구를 인용해 가을을 노래했다. 당나라 이자경의 ‘청추충부(聽秋蟲賦)’라는 시에는 ‘일엽낙혜천지추(一葉落兮天地秋, 나뭇잎 한 잎이 떨어지니 천지는 가을이네)’라는 구절도 있다.
오는 10일은 일년 중 가장 큰 명절인 추석(秋夕)이다. 가을 추(秋)는 벼 화(禾)와 불 화(火)로 나뉜다. ‘禾’는 곡식을 뜻하고 ‘火’는 가을볕에 곡식이 익어가는 것을 나타낸다. 가을이 되면 곡식들이 햇볕을 받아 알곡이 딴딴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火자를 쓴 것으로 이해된다. ‘夕’자는 달 월(月)에서 한 획을 줄인 것이다. 月에서 한 획을 줄인 것은 달빛이 구름에 가려져 있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석(夕) 자를 활용한 한자 중의 하나로 ‘명(名)’이 있다. 전기가 없던 옛날 깜깜한 저녁에 어두운 곳에서 인기척이 나면 입(口)으로 “게 누구요”하고 이름을 물어봤는데, 여기서 이름 명(名) 자가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추석(秋夕)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 나아가서는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이다. 중국인들은 추석 무렵을 중추(中秋) 또는 월석(月夕)이라 하는데, <예기(禮記)>에 나오는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월석은 달빛이 가장 좋다는 뜻이다.
가을은 영어로 ‘폴(fall)’이라고도 한다. 낙엽이 떨어진다는 계절이라는 의미다. 우리말 가을은 원래부터 수확의 의미에서 파생됐다. 열매를 ‘끊는다’는 의미의 ‘갓다(갓)’에 ‘을’이 붙어 ‘가슬’이 되었고 이것이 ‘가을’로 변했다. 울산에서도 추수하다는 의미의 ‘가실하다’는 표현이 어른들 사이에 쓰이고 있다.
가을은 낙엽과 수확, 달빛의 계절이다. 나뭇잎 한 잎이 떨어지니 벌써 천지는 가을이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