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만의 사회와 문화(38)]미국의 9·11사태가 주는 교훈
상태바
[한규만의 사회와 문화(38)]미국의 9·11사태가 주는 교훈
  • 경상일보
  • 승인 2022.09.14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어영문학

미국의 9월초는 새 학년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초·중·고등학교 학생이 있는 집이면 8월 마지막 휴가를 함께 보내고 신학기 준비에 바쁘다. 영어로는 ‘Back to School’ 시즌이다. 곧바로 9월 첫 월요일이 노동절(Labor Day)이어서 토~일~월 연휴를 즐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1년전 2001년, 미국인들의 신학년의 설렘과 노동자 휴식의 즐거움은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나자 산산조각이 났다.

2001년 9월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인근 국방성 건물이 비행기테러를 당했던 것이다. 미국은 경악했고, 미국은 공포에 떨었다. 그 공포와 보복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우방국인 한국에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지난 일요일, 미국에서는 9·11테러 21주년을 맞아 항공기 추락 현장 세 곳에서 추념식이 열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국민을 공격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끝까지 정의를 실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1년 9·11테러는 미국인의 삶을 통째로 바꾸었고 지울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미국 일간 USA투데이가 서포크대와 함께 지난달 1000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0%가 ‘9·11로 미국인의 삶이 완전히 변했다’로 답했다. 85%는 9·11이 그들의 세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지난 20년간 미국에서 일어난 최악의 사건은 코로나19였고, 9·11테러가 2위였다. 9·11테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애국심에 불탔고 정부는 막대한 인명 희생과 경비를 쏟아 부었다. 그러나 그 애국심의 결과는 무엇인가?

애국심의 뒷면에는 검문검색 강화와 반이민 정서, 그리고 유색인종 차별이 춤을 추었다. 그동안 ‘인종의 용광로’ ‘이민자의 나라’ ‘다문화의 나라’라고 자랑했던 미국에서 반이민과 인종차별, 백인우월주의 광풍이 불었고, 트럼프는 이를 영악하게 부채질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정치인도 아니었고 전통적인 공화당원도 아니었다. 학자들은 그를 의사당을 점거해 민주주의를 파괴한 대안우파이거나 극우 백인우월주의자로 본다. 정상적인 정치는 실종됐다.

한편 일상생활의 큰 변화는 공항 검문검색에서 실감한다.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항검색이 강화됐다. 신발과 외투를 벗게 하는 것은 기본이고, 가방에 들어있는 노트북이나 TV카메라는 모두 꺼내놓아야 한다. 극우파가 기승을 부리는 지역에서는 테러집단으로 지목된 아랍계뿐만 아니라 흑인,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가해지는 일상적인 인종혐오 발언과 테러는 심각한 수준이다. 저학력 백인남성을 중심으로 9·11에 대한 공포심과 수치심을 타인 혐오로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문제점은 9·11테러 세력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을 찾아내어 극적으로 사살했으나 이슬람국가의 극단세력은 오히려 번성하게 되었다는 아이러니이다. 미국 정부는 9·11 테러 배후주도자 빈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 신병인도를 요구했다. 탈레반이 요구를 거절하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가장 단호한 응징으로 탈레반에 전쟁을 선포했다. 두 달 만에 탈레반을 퇴각시키고, 아프간에는 친미 과도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얼마전 20년 만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자 아프간 정부는 이슬람 급진 무장조직 탈레반의 진격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그동안 미국이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양성한 아프간 정부군이 별 저항도 없이 게릴라 반군에 항복했다. 미국 정부의 대외정책은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9·11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돼 20년을 끌었으나 미국 정부가 테러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USA투데이 여론조사에서 9·11 이듬해에는 80%가 정부를 신뢰한다고 했지만 10년 뒤에는 75%로, 20년이 지난 작년에는 51%만이 정부를 신뢰한다고 답했다. 정부가 애쓰는 것이 헛발질인 경우가 많아서 국민의 바람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어영문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도시철도 1호선, 정차역 총 15개 조성
  • ‘녹슬고 벗겨진’ 대왕암 출렁다리 이용객 가슴 철렁
  • 울산 동구 주민도 잘 모르는 이 비경…울산시민 모두가 즐기게 만든다
  • [창간35주년/울산, 또 한번 대한민국 산업부흥 이끈다]3년뒤 가동 年900억 생산효과…울산 미래먹거리 책임질 열쇠
  • 제2의 여수 밤바다 노렸는데…‘장생포차’ 흐지부지
  • [울산 핫플‘여기 어때’](5)태화강 국가정원 - 6천만송이 꽃·테마정원 갖춘 힐링명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