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힌남노에 이어 난마돌이 울산을 거쳐 지나갔다. 태풍은 서민들에게 많은 피해를 남기지만 또 한편으로는 속 후련한 느낌을 갖게 하기도 한다. 특히 정치권이 하는 짓들을 보면 초강력 태풍이 여의도를 날려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람이 날아갈 정도가 아니면/ 나는 태풍 속을 걷는 걸 좋아한다./ 우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 남태평양의 공기를 마시겠는가!/ 당연히, 대기(大氣)를 청소하고 재편하는 건 얼마나 기분 좋은가!/ 국가나 권력을 청소하고 재편하는 건 어려워도/ 그래서 마음은 고인 물과도 같고/ 정체되어 독한 공기와 같아도,/ 태풍이 대기를 재편하는 건 얼마나 속 시원한가!… -‘태풍 속을 걸으며’ 일부(정현종)

태풍에 처음으로 이름을 붙인 것은 호주의 예보관들이었다. 그 당시 호주 예보관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가의 이름을 붙였다. 싫어하는 정치가의 이름이 앤더슨이라면 “현재 앤더슨이 태평양 해상에서 헤매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예보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 공군과 해군에서 공식적으로 태풍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이 때 예보관들은 자신의 아내나 애인의 이름을 사용했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 1978년까지는 태풍 이름이 여성이었다가 이후부터는 남자와 여자 이름을 번갈아 사용했다. 이후 태풍 이름은 2000년부터 아시아-태평양지역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태풍위원회 회원국이 제출한 이름으로 변경했다. 우리나라가 등록한 이름은 개미, 나리, 장미, 미리내, 노루, 제비, 너구리, 개나리, 개나리, 메기, 독수리 등이 있다.
태풍이 큰 피해를 끼친 경우에는 유사한 피해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해당 태풍의 이름은 폐기시키고, 다른 이름으로 변경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 최악의 피해를 안겼던 2002년의 ‘루사’와 2003년의 ‘매미’는 퇴출당해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출한 태풍 ‘나비’의 경우 2005년 일본을 강타해 20여명의 인명피해 등을 일으키면서 퇴출당해 ‘독수리’라는 이름으로 대체됐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비행사인 밥 하인즈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우주에서 촬영한 사진을 올리며 “우주에서 보면 이렇게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지구에서는 그토록 끔찍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그런데 태풍이 지나간 가을 하늘은 유난히 높아 보인다. 정현종 시인의 말처럼 태풍이 ‘마음의 먼지와 쓰레기’를 청소했기 때문일까.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