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올가, 매미, 장미, 루사, 곤파스, 차바…. 모두 태풍 이름이다. 그 동안 한국을 통과한 태풍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사람마다 태풍 기억이 선명할 정도로 피해가 심했고, 교육현장 또한 태풍에 얽힌 이야기가 많다.
어르신 기억에 가장 큰 태풍은 1959년 ‘사라’일 것이다. 당시에는 호(號)를 붙였기 때문에 ‘사라호 태풍(Sarah 號 태풍)’이라고 불렀다. 6·25 전쟁 복구가 덜 끝나서 여전히 살기 힘든 시절에 추석을 앞두고 초가집이 날라갔고, 온 살림이 물에 잠겼다. 부숴진 집을 뒤로한 채 등교한 학생 눈에 들어온 것은 똑같이 쓰러진 학교였다.
1991년 8월 글래디스가 동부 경남을 덮쳤고, 물난리가 났다. 그 시절은 토요일에도 수업했기 때문에 방학이 지금보다 길었고, 상당수의 학교가 개학하기 전이었다. 선생님은 열심히 출근해 운동장의 물을 퍼내는게 최선의 개학준비였다.
2002년 루사, 2003년 매미, 2004년 메기, 2005년 나비, 2006년 에위니아, 2007년 나리 태풍이 줄줄이 등장해 한국은 6년 연속으로 수해를 입었다. 대한민국은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태풍 대비책을 세웠고, 매년 보완해왔다. 교육현장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예가 운동장 배수시설 개선, 그리고 태풍 단축수업이다. 옛날에는 땅만 고르게 다져놓으면 운동장이었지만, 지금은 배수로, 상하수도 시설이 완벽해야 운동장 허가가 나온다. 덕분에 태풍이나 폭우로 물에 잠긴 운동장은 갈수록 찾아보기 어렵다. 태풍이 불면 실시하는 단축수업, 조기 하교는 훗날 휴교령으로 발전했다.
필자가 겪은 일이다. 어느 선생님이 비장한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았다. “수업중 죄송합니다. 지금 태풍이 올라오는 관계로 잠시 안내 방송하겠습니다.” 학생들은 집에 일찍 보내주는 줄 알고 ‘OO중학교 만세’ 환호성을 질렀다. “태풍 피해가 없도록 모두들 창문을 잘 닫고 수업에 임해주기 바랍니다. 이상.”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전교생은 원망의 비명을 질렀고, 수업 진행이 잘 안됐다. 교사들은 임오군란의 교훈을 떠올렸다. 처음부터 안해주면 욕만 먹는데, 희망을 줬다 빼앗는다든지(번복), 이상하게 줘버리면(쌀에 모래를 섞어 지급) 뒷감당이 불가능해진다.
매년 태풍이 올 때마다 그 제자들의 눈빛이 생각난다. 간혹 제자들을 만나면 저 얘기로 다같이 웃는다. 몇몇은 보육교사, 중등교사가 되었는데, 이들도 학생들에게 “라떼는 말이야, 태풍 때도 수업 다 했어.” 큰 소리 쳤다고 한다. 허리까지 물에 잠기느라 바지와 속옷이 모두 젖은 경험이 있는 원로교사, 물이 들어차는 버스로 등교·출근해본 부장교사 눈에는 그저 귀여운 장면일 것이다.
김경모 대송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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