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다가올 미래, 인간과 기술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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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다가올 미래, 인간과 기술의 관계
  • 경상일보
  • 승인 2022.09.2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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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 관장

과학 기술은 우리사회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마저 변화시키고 있다. 19세기 산업혁명시대 기계는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했고 직장을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했던 노동자들은 기계파괴 운동인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을 일으켰다. 21세기, 이제 기계는 번역, 글쓰기와 같은 인간의 지식 노동력 또한 대체하고 있다.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는 감정과 감성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창작력조차 AI 기계가 대신 할지도 모르겠다.

동시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기술과 인간을 서로 융합시키며 새로운 환경을 창출하고 있다.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사회적 생태적 질서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는 자연이 아닌 기술에 의해 진화된 인간이 새로운 종으로서 또 다른 환경 안에서 생존해 나아감을 의미한다. 백남준 아트센터에는 아트센터가 소장한지 9년이 된 ‘TV물고기 / Video fish, 1975-1977’라는 작업이 있다. 이 작업 안에는 TV로 만들어진 어항 속에 10년 이상을 산 물고기들이 있다. 이 물고기들은 TV에서 발생되는 인공의 전자 빛 속에 자신의 신체를 이미 적응시켰다. 아마도 이 물고기들을 자연으로 방생한다면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즉 이 물고기들은 새로운 인공의 환경에 맞추어 자신들을 진화시켰고, 이 새로운 환경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새로운 생존질서를 만들어 왔던 것이다.

다가오는 미래에 기계는 더 이상 도구나 환경이 아니라 인간과 융합되는 존재이다. 인간은 새로운 종으로 진화될 것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자연과 인공 간의 경계를 구분지울 수 없는 환경이 될 것이다. 이러한 미래에 인간의 정체성은 생물학, 과학, 철학적으로 재정립되며 그에 따른 새로운 법과 사회제도가 창출되어 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질서는 우리의 예상과는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진화론적 본성은 언제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조건만을 추구하며 도덕적, 윤리적으로 올바른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오로지 종의 번성이란 본능에 의한 질서를 추구하며 자연과 조화의 관계, 인본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와는 다른 길로 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미래란 다양한 선택지 위에서 희망과 불안의 양립적인 갈림길을 마주하고 있다.

인류는 현재 디지털 시대를 넘어 양자역학 시대로 넘어가는 시점에 있다. 또한 가상, 증강현실이나 트랜스 휴머니즘(인간과 기계가 융합된 새로운 종의 인류) 등, 인간과 기술의 간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이 창출되고 있다. 미래의 우리 사회는 기술에 의한 자연 정복론과 이원론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오히려 기계와 자연 간의 조화론과 일원론에 그 기초를 두어야한다. 위대한 예술가 백남준은 인간, 기계, 자연을 공생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로 놓으며 상호호혜의 유토피아 세상을 꿈꾸었다. 디지털과 양자시대로 나아가며 광속도로 변화하는 미래의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은 기술과 새로운 합일론적 관계를 요구받고 있다. 가속화하며 발전하는 과학은 수단에서 환경을 지나 인간 그 자신과 융합되어가며 미래의 사회를 만들어갈 것이다.

유기물인 인간과 무기물인 기계간의 경계가 완벽히 무너질 수 있을까? 물질과 비물질,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어디까지 융합될 수 있을까? AI와 같이 과학 기술은 인간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스스로 독립적인 주체로서 거듭날 수 있을까? 미래의 사회 질서는 어떻게 재편될 것인가? 등등, 21세기 현재, 새로운 시대사적 질문들이 우리에게 쏟아지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 또한 이러한 미래의 질문에 대해 반응하고 응답해야하는 사회적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미래 사회는 인간과 기술이 서로 종속적인 의지의 관계가 아니라, 상생하며 조화와 공유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는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서 말이다.

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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