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광복절과 패전기념일
상태바
[태화강]광복절과 패전기념일
  • 경상일보
  • 승인 2022.09.26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전상귀 법무법인현재 대표변호사

사람들에게는 기념하는 날이 있다. 출생일, 제삿날, 결혼기념일 등등. 사회나 국가도 의미를 부여하는 날이 있다. 태음태양력을 써 온 전통으로 양력과 음력을 병용하여 뜻을 새긴다. 성현 탄생일, 기쁜 날, 고난일, 뜻 깊은 날, 전통적으로 기념해 오던 날 등 각양각색의 기념일 중에 달력에 빨간색을 칠해 놓고 휴일로 하는 날도 상당수 있다.

크리스마스(양 12·5)와 석가탄신일(음 4·8)은 휴일인데, 유교와 도교의 그림자가 짙은 나라에서 공자나 노자의 탄신일은 기념하지 않는다. 세종, 이순신, 퇴계, 율곡이 아무리 훌륭하다 한들 기리는 휴일은 없다. 개천절(10·3)과 광복절(8·15)은 기쁜 날이라 할 수 있다.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열었고 또 되찾은 날이니 말이다. 신정(양 1·1), 설(음 1·1), 한가위(음 8·15), 제헌절(7·17), 현충일(6·6), 개천절(10·3), 광복절(8·15), 한글날(10·9)들은 역사가 묻어 있는 의미있는 날들이다.

기념일 중에 숫자를 읽는 방식으로 부르기도 한다. 삼일절(3·1), 사일구(4·19), 오일육(5·16), 오일팔(5·18), 십이십이(12·12), 사삼(4·3). 육십(6·10) 기념일의 명칭을 숫자로 읽으면 의미가 감쇄된다. 개천절, 제헌절, 광복절 등과 같이 독립만세일(3·1), 불의항거기념일(4·19), 민주화운동기념일(5·18)처럼 이렇게 명확히 부르는 것이 어떨까. 헌법 전문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의 계승’으로 명기했다. 개헌의 기회가 오면 헌법 전문도 손 봐야 할 것 같다. 다시는 이 나라에 국권상실, 전쟁, 자유박탈, 민주훼손 같은 이런 일들이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삼천리강산에 고난일(苦難日)이 왜 없으랴. 유장한 오천년 역사에 아픔도 많았다. 위만조선 멸망(기원전 108년), 고구려·백제의 멸망, 몽고에 대한 항복(1259년), 조선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나라에 머리를 조아린 날(1637.1.30), 그리고 경술국치(1910.8.29). 패망을 극복하고 광복했으니 헌법 전문의 표현대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다. 세계 역사상 4번 잃고 5번 되찾은 나라는 아마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어찌 잊으랴 1950년 6.25 전쟁! 남녀노소가 눈을 부릅뜨면서 북한을 규탄하는 날. 북진의 소리만 높였지 국제정세에는 깜깜이여서 속절없이 당했던 그 날. 그런데 신기하게도 휴전일(1953.7.27)을 물으면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역으로 8·15 광복은 대부분 아는데 8·29 경술국치는 모른다. 광복절 노래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고 만세를 부르며 눈물 흘렸던 것은 일제 36년이 민족의 암흑기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8·15를 종전기념일로 부르는 모양이다.(일본인의 일부는 패전기념일로 칭하기도 한단다.) 일본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진주만을 비롯해 동남아에 이르도록 크나큰 고통을 주었다. 하지만 미국의 원자폭탄의 투하로 항복하였는데 일본인은 이날마다 신사에 몰려간다. 일본은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로마에 항거해 최후의 일인까지 죽었던 곳을 ‘통곡의 벽’이라 부르며 그 아픔을 기억한다고 한다. 임란(壬亂) 시에 최후까지 항전했던 칠백의총에 묻힌 구국의 혼과 진도와 제주에서 항거했던 삼별초의 뜻, 그리고 휴전 직전 한 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애썼던 피비린내 나던 전투의 현장을 잊어서야 되겠는가. 더하여 이완용의 서명 몇 글자로 대한제국은 국권을 잃었다는 허약함도 잊을 수 없다. 기쁠 때는 어려웠던 때를 기억하고 힘들 때는 수월한 때를 기억하자.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니 말이다.

전상귀 법무법인현재 대표변호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대형 개발로 울산 해양관광 재도약 모색
  • [기자수첩]폭염 속 무너지는 질서…여름철 도시의 민낯
  • 신입공채 돌연 중단…투자 외 지출 줄이고…생산직 권고사직…허리띠 졸라매는 울산 석유화학업계
  • 아마존·SK, 7조규모 AI데이터센터 울산에
  • 울산, 75세이상 버스 무료 교통카드 발급 순항
  • 방어진항 쓰레기로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