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사진) 48영의 시적 분위기를 상상하여 그린 ‘소쇄원도’를 보았다면 직선으로 면을 분할한 기하학적 평면구성에 사뭇 놀랄 것이다. 실제로 정원에서 느끼는 감흥은 자연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듯하여 인위적인 느낌을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담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주변의 원림과 구분되어 방처럼 아늑함을 주고 높낮이를 달리한 정자와 외나무다리가 걸쳐진 깊고 좁은 개울 등이 공간에 깊이감을 더해준다.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소쇄원은 500년을 그러하듯 초록의 대나무 길을 따라 올라가면 깊은 초록의 점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긴 애양단은 병풍처럼 맞이하고 자연스럽게 발길을 돌려 오곡문으로 향하게 한다. 제월당을 돌아 광풍각으로 내려오면서 보이는 축대와 담장은 마삭줄과 이끼 낀 기와에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낮은 담을 따라 시선이 머무는 곳에 동백나무, 자목련의 가지에 핀 이끼는 시간의 흔적을 가늠케 한다.
‘세상 먼지 벗어난 생각 담박하고 씻은 듯하네/ 계단 위로 오르며 소요하니/ 읊조리면 한가롭고 뜻 낱낱이 살아나는구나/ 읊기를 마치니 다시 세상 잊은 정이로다’
(소쇄원 48영중-제23영 계단을 따라 산보하며 수양함)
올해로 한국조경 50년으로 제58차 IFLA 세계조경가대회가 예향의 도시 광주에서 개최됐다. 30년 전 경주 IFLA 행사를 떠올리며 참관 후 들렀던 곳이라 우리의 정원문화를 되새겨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소쇄원이란 소중한 정원 유산이 기묘사화에 얽힌 조광조라는 500년 전의 개혁정치가의 좌절이 낳은 부산물이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정홍가 (주)쌈지조경소장·울산조경협회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