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우의 경제옹알이(21)]이 도시를 사랑하는데 꼭 부자일 필요는 없다
상태바
[유동우의 경제옹알이(21)]이 도시를 사랑하는데 꼭 부자일 필요는 없다
  • 경상일보
  • 승인 2022.10.07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유동우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는 케이프타운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인종차별로 악명이 높다. 그리고 빈부격차도 큰 나라다. 물가수준도 매우 낮아 유럽 스타일의 음식을 풀코스로 마음껏 먹어도 별로 비싸지 않았다. 케이프타운은 위험한 도시라고 들었는데, 가보니 안전한 지역은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리고 빈부격차가 확연한 도시였다. 부유한 지역과 가난한 지역은 전혀 달랐다. 부유한 지역의 집 담장에는 전기가 흐르는 철망이 있었다. 가난한 지역은 요리를 하기 위해 불을 공동으로 사용하는데, 화재가 발생한다고 했다. 그리고 화재가 발생해서 다 타버린 지역만 정부에서 재개발을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빈민가에 재개발이 된 곳은 상대적으로 나아 보였지만 예쁘지는 않았다. 그냥 이질적이었다.

남아프리카에서 영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했다. 새벽 비행기라 공항으로 가는 첫 버스를 타야했다. 누군가는 위험하다고 했지만 버스를 탔다. 버스에 승객은 나밖에 없었다. 동양인이었으니 관광객으로 생각되었으리라. 버스 정류소에 있는 직원이 나에게 물었다. 케이프타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아름다운 도시라고 대답했다. 느꼈던 그대로였다. 그리고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부자라면 살기 좋은 도시일 것 같다고. 미국에서 갓 교수가 되었던 때였다. 젊어서였을까 아니면 미국에서 교수를 한다는 지적 허영이었을까. 빈부격차는 충격적이었고,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은 좋았다. 그래서였는지 어쩌면 덧붙이지 않았어도 될 말을, 그래도 느낀 그대로 이야기했다.

새벽에 버스 정류장에서 일하던 흑인 여직원이 대답해 주었다. 아니 가르침을 주었다. “Look at me, you don’t have to be rich to love this city. 자기를 보라고, 이 도시를 사랑하는데 꼭 부자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미국 대학에서 교수를 하던 젊은 교수의 지적 허영은 그렇게 산산이 부서졌다. 불평등이 일상인 곳에서 살고 있는 그녀에게, 동양인 관광객의 가르치려 하는 태도는 어쩌면 우스웠을 것이다. 그래도 솔직했기 때문일까, 그녀는 대답해 주었고, 가르침을 주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2021년 10월9일 기사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전 세계적 흥행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다. ‘Like love and money, complaints about inequality have no language. 사랑과 돈처럼, 불평등도 언어가 달라도 잘 전달된다’는 것을 오징어게임이 보여준 것이다. 맞는 말이다.

심각한 불평등에 대해 처음으로 접했던 것은 브라질에 갔을 때였다. 한국에서 불평등에 대한 수업을 들었을 때, 담당교수는 이야기했다. 지니계수로 보면 한국의 불평등 지수는 낮은 편이라고. 그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크다고 언론에서 계속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대학원생 때, 영국 캠브리지대학의 저명한 경제학자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한국의 불평등은 국제적 기준으로 보면 심하지 않은 편이라고. 버스비가 없어서 두 시간 동안 걸어서 일터에 가는 브라질 같은 나라에 가봐야 심각한 불평등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브라질에 가보니 진짜 그랬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있는 집에는 유리창이 없었다. 그냥 벽에 구멍이 나 있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도의 경제성장을 경험한 한국의 불평등은 1990년대 후반의 IMF 금융위기 전까지는 계속 개선되어 왔다. 경제성장은 교육의 확장과 함께 진행됐다. 국민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자 경제성장과 함께 교육을 받은 도시 노동자의 임금도 같이 상승했다. 이는 지니계수와 불평등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국민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자, 교육을 받지 못한 저임금 노동자의 수도 줄어들었다. 그러자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도 상승했다. 교육을 받지 못한 저임금 노동자의 공급이 줄었기 때문이다. IMF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한국 사회의 불평등 이슈는 달동네라고 불리는 도시빈민에 대한 이슈 정도가 주된 내용이었다.

IMF 금융위기 이후, 지니계수와 불평등은 악화되었다. 국제적인 수준에서 불평등은 여전히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지만, 고도의 경제성장을 경험한 한국 사회에는 다른 특징이 있었다. 과거에는 모두가 다 같이 평등하게 가난하다가, 경제성장이 일어나니 더 많이 더 빠르게 돈을 번 사람들이 생겼다. 똑같이 가난하다가 누구는 더 많이 잘 살게 되었으니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브라질처럼 버스비가 없어 두 시간씩 걸어서 일터에 가지는 않지만, 브라질의 이야기는 브라질의 이야기이고, 한국에서는 한국의 이야기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래도 국제적 시선에서 바라보자면, 한국에서 절대빈곤은 많이 사라졌다. 청년들이 이야기하는 불평등은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프다는 의미의 절대적 빈곤이 주요사항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부모를 잘 만나고, 쉽게 돈을 벌고, 더 비싼 것을 소비하고, 더 편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상대적 빈곤에 가까운 측면이 있다. 상대적 빈곤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여러 방식으로 정의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중위소득의 50% 이하를 상대빈곤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상대적 빈곤은 사라지지 않는다.

절대적 빈곤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도시를 사랑하는데 꼭 부자여야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열심히 일을 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말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해서 편하게 살지 못한다며 불평등하다고 말하는 청년들에게는, 우리 세대에서는 서울에서 태어난 것도 스펙이라고 말하는 청년들에게는, 그래서 그런 불평등 때문에 노력해 보아도 소용이 없다는 핑계를 대는 듯한 청년들에게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더 좋다고 하거나, 조금 노력해 보고 포기하는 청년들에게는, 아니면 위험한 코인투자가 유일한 해답이라고 주장하는 청년들에게는 그 말을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불평등의 상징인 강남의 아파트는 대한민국의 상류층의 상징이지, 평균이 아니다. 강남의 아파트를 쉽게 가지지 못하니 불평등하다고 말하는 것은, 불평등의 문제점과 강남의 아파트를 가지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을 섞은 교묘한 논리에 가깝다. 다만 불평등에 대한 문제점이 오징어게임처럼 쉽게 공감을 받으니, 섞여 있는 욕망에 대해서는 대부분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불평등을 그냥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쉽게 부를 물려받은 사람들의 모습에는 잘못된 점도 매우 많고, 불평등은 꼭 고쳐져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이 글은 노력이 쓸모없다고 하는 청년들에게 하는 말이다. 청년들이 노력의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삶의 철학적 측면에서 절대빈곤에 빠져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청년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꼭 부자여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노력에는 항상 의미가 있다. 청년이란, 나이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말하는 정해진 길을 벗어나 더 넓게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정해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유동우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 곳곳 버려진 차량에 예산·행정 낭비
  • 확 풀린 GB규제…울산 수혜 기대감
  • 궂은 날씨에도 울산 곳곳 꽃놀이 인파
  • [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복효근 ‘목련 후기(後記)’
  • [기고]울산의 랜드마크!
  • 이재명 대표에서 달려든 남성, 사복경찰에게 제압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