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글 새로운 우수성
상태바
[기고]한글 새로운 우수성
  • 경상일보
  • 승인 2022.10.07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임규홍 국립경상대학교 명예교수

다가오는 10월9일은 576돌 한글날이다. 우리에게 한글은 무엇인가. 우리 겨레는 지금부터 576년 이전 글자 없는 세상에서 살았다. 우리말은 있었으나 그것을 적을 수 있는 글자가 없었다. 어리석은 백성이 할 말이 있어도 그걸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걸 보고 불쌍하게 여겨 글자를 만들었다는 세종의 백성을 사랑하는 간절한 정신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하다. 우리말을 적을 수 있는 글자가 없었기에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에 우리겨레가 어떤 말을 사용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우리말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우리 계레의 기적이고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한글의 우수성은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는 것도 모두 안다. 전문가들도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라는 것도 모두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한글이 가지고 있는 널리 알려지지 않는 또다른 우수성이 있다. 한글이 발성기관을 본떴다는 것만으로도 음성학적으로 신묘하다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 한글의 글꼴(상형)이 우리말의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은 한글이 가진 또 다른 우수성이다. 다시 말하면 한글의 형태가 우리말의 의미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글 모음은 삼재라는 ·, ㅡ, ㅣ를 중심으로 획을 더해가면서 만들었다. 그런데 ㅏ 는 ㅣ에 ·가 [밖]에 있는 모습이어서 /ㅏ/로 된 우리말은 ‘가다’ ‘나다’와 같이 [밖]의 뜻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ㅓ는 ㅣ 에 ·가 [안]에 있는 모습이어서 /ㅓ/로 된 우리말은 ‘넣다’ ‘먹다’와 같이 [안]의 뜻을 나타낸다. ㅜ는 ·가 ㅡ 아래에 있어서 /ㅜ/로 된 말은 ‘누다’ ‘눕다’ ‘묻다’와 같이 [아래(밑)]을 나타낸다. ㅗ는 ·가 ㅡ 위에 있어서 /ㅗ/로 된 우리말은 ‘오르다’ ‘솟다’와 같이 [위]나 [오름]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 많다. 자음도 마찬가지다. 입술소리 /ㅁ/은 닫혀진 입술을 본떴으며 소리도 [안]으로 울리는 소리이다. /ㅁ/이 닫혀있는 꼴에 따라 /ㅁ/으로 된 우리말 또한 [안]으로 [닫힌] 뜻을 나타낸다. 예컨대 먹다, 머물다, 물다 등이 있다. 이와 다르게 /ㅂ/은 입술이 [열린] 모습이며 소리도 [터지는 ]소리다. 따라서 /ㅂ/의 꼴이 위에 터져 있어서 /ㅂ/으로 된 우리말은 ‘불다’ ‘밝다’ ‘부풀다’와 같이 [밖]으로 [터짐]의 뜻을 나타낸다. /ㄹ/은 물이 흐르는 꼴이어서 흐름소리가 되고 /ㄹ/로 된 우리말은 [흐름]의 뜻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ㅇ/은 닫혀 있는 꼴이어서 소리도 [닫혀] [안]으로 울려나는 소리다. 꼴이 닫혀 있어서 /ㅇ/ 으로 된 소리는 [닫힘]이나 [울림]의 뜻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ㄲ, ㄸ, ㅃ, ㅆ, ㅉ의 된소리나 ㅋ, ㅌ, ㅍ, ㅊ 거센소리들은 예사소리 ㄱ, ㄷ, ㅂ, ㅅ, ㅈ에 획을 더하거나 글자를 나란히 덧붙여서 꼴이 더 복잡해지면서 소리도 된소리와 거센소리가 된다. 그리고 획이 하나 더해지는 것만큼 뜻도 강하거나 더 거세게 된다. 한글은 형태가 의미를 나타내는 도상성 원리에 맞게 만들어졌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상당히 경향성을 보이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한국어와 한글 소리 글꼴 뜻》(임규홍, 2022, 경상국립대 출판부).

한글은 발성기관을 본떴고 발성기관에 따라 소리가 다르고 소리의 다름에 따라 뜻이 다르다. 따라서 한글의 글꼴은 소리를 본떠고 소리에 따라 뜻이 달라지기 때문에 글꼴이 우리말의 뜻을 나타낸다는 인과관계가 성립이 된다. 결론적으로 한글의 글꼴은 소리와 뜻과 모두 서로 필연적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 문자 가운데 발성기관을 본떠서 글자를 만든 것도 없을뿐더라 글꼴이 나타내는 모양에 따라 뜻을 담고 있는 문자는 세계 어떤 문자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한글은 글꼴과 소리와 뜻이 하나로 통합되어 체계적이며 유기적 관계를 가진 신비한 문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인지의 ‘훈민정음해례본’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하루 아침에 배울 수 있고, 어리석은 자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고 한 것이 결코 빈말이 아니다. 기본 글자만 알면 거기에 획을 더하기만 하면 새로운 글자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한글을 보면 언제나 가슴이 뿌듯해진다. 기분이 좋아지고 자존감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런데 나라에 온통 외래어와 로마자가 가득하니 또한 슬퍼진다. 세종임금이 글자가 없어 답답해 하던 백성들에게 애써 글자를 만들어 주었거늘 후손들은 어렵고도 알지도 못하는 한자나 로마자를 자랑삼아 사용하는 꼴을 본다면 얼마나 통탄해 할까. 이제 제발 뜻도 모르는 외래어로 무식한 허세를 부리지도 말고 알지도 못하는 로마자로 말문을 막지 말았으면 한다.

임규홍 국립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외부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 곳곳 버려진 차량에 예산·행정 낭비
  • [지역민도 찾지 않는 울산의 역사·문화명소]울산 유일 보물 지정 불상인데…
  • 확 풀린 GB규제…울산 수혜 기대감
  • 궂은 날씨에도 울산 곳곳 꽃놀이 인파
  • [기고]울산의 랜드마크!
  • 이재명 대표에서 달려든 남성, 사복경찰에게 제압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