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난감할 때가 있다. 자신이 명백히 잘못해놓고도 사과를 거부하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이다. 이때 우리는 우선 이 사람이 왜 이러는지 그 심리라도 알고 싶다. 그 다음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부부나 선후배 사이의 사적 관계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지만, 정치나 공공 분야에서 이같은 일이 발생하면 언론을 타면서 격렬해지고 민감해진다.
미국에서도 유명인이나 대통령의 실언이나 폭언으로 세상이 시끄럽기도 하고, 진심어린 사과로 매듭이 풀리기도 한다. 요즈음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외교활동 중 터져나온 품격없는 언사로 온 세상이 시끄럽고 국민의 귀가 피로하다. 엘튼 존은 노래한다. ‘그리고 미안하단 말이 제일 힘든 것 같네요./ 슬퍼요, 너무나 슬퍼요. And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It‘s sad, so sad.’
사과를 거부하는 사람들(non-apologists)에 대한 미국 심리학자들의 분석에서 우리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대중인생상담 전문가 윈치(Guy Winch)의 테드 강연은 그 중 하나다. 전문심리치료사인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출판된 책 <상실을 이겨내는 기술>과 <불평하라>의 저자이다.
강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많은 독자들에게 이런 편지를 받습니다. 어떤 이는 분명히 잘못했으면서 사과를 안합니다. 완고한가요? 책임있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나요?”
그의 답변이 이어진다. “분명히 양식있는 우리들도 때로는 사과를 못합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지요. 하나는 나의 실수로 불편한 감정을 가질 타인에 충분히 관심이 없기 때문이죠. 두번째는 내 사과는 중요치 않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심리적 분석을 이렇게 한다. “자신은 강한 사람이라며 사과하지 않지만 사실은 연약합니다. 분명히 잘못했으면서도 사과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 잘못인정과 사과는 심리적으로 위협적입니다. 사과를 수치로 여깁니다. 사과할 수 없는 사람은 종종 ‘자신을 이해하는’ 자기감(sense of self)이 낮은 사람이죠. ‘인간이’ 잘못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연약한 자아(a fragile ego)를 가진 사람이죠. 이런 사람은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를 작동시켜서 자신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결과적으로 점점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윈치의 진단이다. “잘못에 또 잘못을 저지르면서, 상황을 비난하고 사실을 부인하며 다른 사람을 공격합니다. 이렇게 하여 스스로 강하다는 느낌을 가집니다만, 연약한 사람의 공격일 뿐이죠, 방어기제가 강할수록 자신이 보호하고 싶은 내부 자아는 연약합니다. 어떤 학자는 이를 열등감의 발로라고도 말합니다. 슬픈 현실은 이런 사람들과의 싸움에서 우리가 이길 수 없으며, 난감하고 불쾌해집니다. 이럴 경우, 우리는 이들과의 논쟁과 접촉을 최소화하는데, 이들이 나와 친한 사이라면 동정심을 가지세요. 겉으로 황소같이 완고하더라도 사실 이들은 연약하고 흠결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윈치의 테드강연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다른 명사들도 조언한다. 사회심리학자 치알디니 Cialdini)는 ‘진솔한 사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 사과는 신뢰 리더십의 언어이다.’라고 했다. ‘잘못을 지적받으면 기뻐하라.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사과를 잘한다. 사과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반성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한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나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는 데에 관심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미국대통령 가운데 사과를 여러 번 적절하게 잘한 오바마는 존경받고 있고, 사과를 거부한 오만한 닉슨은 사임하게 되자 사과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올바른 사과에는 3Rs가 있다고 한다. 그 것은 후회 표현(Regret), 책임 인정(Responsibility), 복구 약속(Remedy)이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어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