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를 대비하는 한국 교육의 혁신은 대학에서 출발해야 하며, 대학 입시정책은 우리 아이들이 각자의 특성을 키우면서 자유롭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을 보장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학은 갈수록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어려운 수렁에 깊이 빠져드는 것 같다. 인구 절벽에 따른 입학생 수 급감, 14년간 반값 등록금, 입학 전형료 인하, 입학금 폐지, 기부금 수입 감소, 대입전형 방법의 통제, 종합감사,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를 비롯한 각종 재정지원사업 평가, 국내외 언론사 대학 순위,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인프라 구축, 교육의 질 저하, 등록금 반환 논란 등 계속 쌓여가기만 하는 일련의 부담들로 절벽에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요소들이 갈수록 대학이 자율적으로 의사결정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나름대로 대학 발전전략을 펼쳐나가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대학들은 정부, 정치권, 시민단체, 언론 등 이해관계자에 둘러싸여 관리의 대상이 되어버렸고, 결국 늘어나기만 하는 각종 규제, 통제로 인해 획일적이고, 경직적인 생태계에 갇혀버린 것 같다.
한국 대학 재정의 특이한 점은 고등교육비에 대한 투자를 대부분 민간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등교육비 투자에서 OECD 평균 민간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32%, 정부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66% 수준이다. 핀란드,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등은 고등교육비 투자에서 정부재원 비중이 90% 이상을 차지했다. 그런데 한국은 고등교육비 투자에서 민간재원이 62%, 정부재원이 38% 수준이다. 물론 일본, 영국, 미국, 칠레, 호주 등도 민간재원의 부담이 높은 국가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대학들의 주된 관심사는 재정확보와 국내외 대학 평가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지난 14년간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의 급감 그리고 지속된 경기침체 영향으로 기부금 수입도 감소하면서 갈수록 악화되는 재정 압박은 대학을 움츠리게 했다. 대학들은 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수십억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정부의 각종 재정지원 사업에 절박한 심정으로 매달리고 있다.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면 정부 재정지원 자체가 제한되고, 학생들에 대한 국가장학금, 학자금대출이 제한받을 수 있어 입학생 유치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보니, 대학본부는 교육, 연구, 사회적 역할이라는 본질적 사명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재정 및 평가라는 수단적인 요소들을 핵심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재정지원 방식은 정부가 사업내용과 방향을 먼저 정하고 대학을 이끌어가는 하향식 접근 방식이다 보니, 대학별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대학을 획일적으로 만든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주도하는 각종 재정지원 사업들은 교육 경쟁력 및 연구역량 강화보다는 부작용을 양산하거나 대학에 대한 정책 유도 및 관리 수단으로 활용되어왔다는 비판도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재정지원 방식은 결국 대학 스스로 장·단기 목표를 설정하고 자율적 운용을 통한 역량 강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막대한 정부재정 지원이 투입되지만, 지금처럼 가뭄에 물주는 방식의 지속성 없는 재정지원 사업은 대학의 재정 건전성 확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것 같다.
한편 오늘 우리 사회는 세계적인 경쟁력 있는 대학보다는 대학에 공정성, 취업률 상승을 더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Z세대 청년들의 관점에서도 취업 준비가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교수들은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은 물론 교내외 개인 및 기관 평가에서 숫자 중심의 연구 업적 비중이 높으므로 교육보다는 연구 그리고 질보다는 양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이 변화와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 더불어 주변 환경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대학이 정부, 사회,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기대가 많이 떨어진 것에 대해 먼저 스스로 깊이 성찰하고 태도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대학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일 때, 주변 이해관계자들의 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정부의 재정지원과 대학 평가, 그리고 이를 둘러싼 국가 거버넌스의 생태계를 생산적으로 전환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관련 당사자들 사이에 역할을 분담하는 수평적 협업 관계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전국대학 산학협력단장·연구처장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