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원점이다.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해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하기로 했던 계획은 기획재정부가 예비타당성 면제사업이 아닌 사업계획적정성 재검토 대상으로 전환하면서 우선멈춤 상태다. 낙동강통합물관리 방침에 따라 운문댐 물을 울산에 공급하기로 했던 계획은 대구·구미시가 ‘맑은물 나눔과 상생 발전에 관한 협정’을 지난 8월 해지하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여기에 김두겸 울산시장은 맑은물 확보 전까지는 절대로 사연댐에 수문을 달지 않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2025년까지 완료하기로 한 사연댐 수문설치 사업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문재인 정부와 송철호 전 울산시장이 만들어놓은 ‘반구대암각화 보존과 맑은물 확보 동시 해결’ 방안은 첫단추도 끼우지 못하고 원점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현재 사연댐 수문설치 사업에 대해서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적정성 검토를 하고 있다. 댐의 안전성 확보 사업으로 분류돼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됐던 사업이지만 수문설치를 통한 치수와 반구대암각화 보존 목적이 추가되고 추정예산이 500억원 이하에서 700억~800억원으로 늘어나면서 사업계획적정성 재검토사업으로 변경된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이 검토를 통과하면 사업시행이 가능해지지만 다른 문제가 이미 불거져 있어 그마저도 쉽지 않다. 대구·구미시의 협정해지로 대구시의 낙동강 취수원 조정이 불가능해지면서 운문댐 물의 울산 공급도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울산시의 입장도 맑은물 확보 우선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수문설치를 먼저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수십년간 비슷한 논란의 반복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꿈꿀만큼 중요한 유적인 반구대암각화 보존의 중요성과 국민들의 생명과 다름없는 맑은물 공급이라는 기본적 복지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정부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보수와 진보로 정권이 거듭 바뀌었지만, 어느 정권도 책임감 있게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고 하기 어렵다. 표피적이고 정치적인 제스처 뿐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실수와 실패만 거듭해왔다. 그 사이 반구대암각화는 눈에 띌 정도로 훼손이 가속됐고 울산시민들의 식수는 불안하기 그지없는 낙동강물 의존도가 높아가고 있다.
반구대암각화 보존과 맑은물 확보, 어느 것이 덜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반구대암각화는 세계적 문화유산이고, 사연댐은 울산의 유일한 식수원이다. 사연댐 수위를 낮추는 것이 암각화보존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것을 수십년째 반복적으로 되뇌면서도 맑은물 공급방안 하나 찾아주지 못하는 정부 탓에, 결과적으로 암각화도 잃어가고, 맑은물도 포기한 안타까운 상태로 우리는 또 수년을 허비해야만 하는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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