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돌아온 운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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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돌아온 운동회
  • 경상일보
  • 승인 2022.10.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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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정 온남초등학교 교사

3년 만에 운동회가 돌아왔다. 같은 학년끼리 오전 시간 동안 하는 작은 운동회지만 날짜가 다가올수록 어린이들은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각자 어떤 경기에 참가할지를 결정할 때 그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여전히 전 학년이 모이는 큰 행사는 하지 못하고 있지만, 동시에 두 학급까지만 사용할 수 있었던 체육관에 여덟 반이 다 모인다는 걸 생각하면 이제 한 시기가 지나간다는 걸 체감할 수 있어 반가웠다.

전통적인 방법대로 홀수 반을 청팀, 짝수 반을 백팀으로 나누어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운동회 당일 아침, 복도에 선 학생들이 옆 반 친구들과 대화를 하며 은근히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줄을 서서 체육관으로 내려가면서는 다들 “아,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냐?”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자니 웃음이 새어나왔다.

체육 선생님의 힘찬 구령 아래 다 함께 준비 운동을 한 뒤, 교장선생님의 응원과 함께 운동회를 시작했다. 첫 번째 경기는 2인 3각 달리기였다. 출발 신호와 함께 신나게 달리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이게 웬걸, 아이들이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체육 시간에 미리 연습을 해보긴 했지만 익숙하지 않았던 건지, 넘어질 것이 두려웠는지 걸어가는 아이들이 많았다. “하나, 둘! 하나, 둘!” 소리 내며 발을 맞춰 달려보라고 외쳤다. 다행히 회를 거듭할수록 용기를 내서 달려나가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조금 변화를 주어 짐볼 맞잡고 이어달리기를 진행했다. 2명이 짐볼을 맞잡고 달린 후, 다음 선수들에게 짐볼을 건네주면 된다.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마음이 급해 먼저 뛰어가다가 짐볼을 놓치지 않을까 은근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함께 하는 친구와 같은 빠르기로 나란히 달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초등학생들이 가장 사랑하는 구기 종목인 피구가 빠질 수 없었다. 각 반에서 공 좀 던진다는 선수들이 코트로 나와 불꽃 튀는 경기를 시작했고, 관중석의 환호와 응원 열기는 사직구장 못지않았다. 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응원가를 목청껏 부르는 모습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졌다. 마지막 종목은 줄다리기였다. 교과서에서 배운 줄다리기를 직접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넣은 것이었는데, 아이들은 요령 없이 온몸으로 줄을 당겼다. 운동회 뒤에 쓴 소감문에는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아마 다음에도 온 힘을 다해 줄다리기를 하지 않을까. 스포츠에는 나도 모르게 최선을 다하게 하는 힘이 있으니 말이다.

각 종목에서 청팀, 백팀이 번갈아 이기면서 운동회는 무승부로 끝났다. 승부가 확실히 나지 않아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많은 인원이 모여서 행사를 한 것만으로 신나는 시간이었다. 퇴근 즈음에 목이 쉬어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달리거나 공을 던질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던 게 생각이 났다. 나도 꽤나 이 시간이 즐거웠나보다.

이민정 온남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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