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의 최근 3년간 식량자급률이 2018년 46.9%, 2019년 45.8%, 2020년 45.8%로 수요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곡물자급률은 2020년 20.2%로 10년 전인 2010년 22.6%보다도 낮다. 특히 밀과 옥수수는 거의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곡물자급률 하락의 원인은 1976년 이후 100%이상 자급 가능한 쌀의 소비 비중이 계속 줄어들고, 밀 등 다른 곡물의 수입이 늘었으며, 가축사료용 곡물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들어서, 기후변화 이야기의 홍수시대가 됐다. 기후대가 조금씩 변화하면서, 열대·온대·한대·건조대 등 기후대 개념이 조만간 무의미해질지도 모른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즉, 극지방의 한대기후가 사라지고, 적도 부근에는 열대기후 대신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후가 등장할 것이라는 것이다. 사계절이 뚜렷했던 우리나라의 여름이 더 길고 더워지며, 겨울이 짧아지는 것도 온대기후대에서 아열대기후대로 변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기후대가 변화하면서 지금까지 농작물 재배가 가능한 지역에 몰려 살던 인간은, 기후변화로 인한 폭우·폭염·가뭄과 인간에 의한 인위적 사막화(벌채, 과잉방목, 농약남용)로 농경지 면적이 줄어드는 것과 식량수확 불안정으로 인한 식량위기론이 거론되고 있다.
각 나라들은 기후변화에 따르는 기후위기를 막아보겠다고 파리기후협약 등 국제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현재의 상황을 보면, 국가·민족의 경제적 이익우선주의가 최우선으로 작용하는 현실을 보면, 과연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세계식량기구(WFP) 사무총장 데이비드 비즐리는 최근 트위터에 절절한 호소문을 띄웠다. 세계에 절체절명의 식량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였다. 글로벌 식량부족이 취약국가와 저소득층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식량가격 급등에 따른 소요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가족을 제대로 먹이지 못하게 된 분노한 시민들은 정권을 겨냥하는 게 세계 역사라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도 빵 값이 급등한 뒤 일어난 것이었다. 2007년 국제곡물가격이 동시에 뛴 에그플레이션(agflation)이 있었던 때 필리핀·인도네시아·이집트 등에서 동시다발적인 시위와 폭동이 일어났었다. 2011년 들불처럼 번졌던 ‘아랍의 봄’ 소요사태도 만성적인 고물가와 식량난에서 촉발됐다. 튀니지·리비아·이집트·예멘·시리아·바레인 등에서 정권이 뿌리째 흔들리거나 내전이 발생했다.식량문제가 기본적인 먹거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정치, 무역,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되새기게 한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을 생각해내기도 하고, 전쟁도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식량이 무기화될 수 있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를 해소하는 것에서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세계 곡물교역의 특징은 수출이 일부국가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수입은 많은 국가에 분산되어 있는 시장구조에다가 곡물 유통량의 80%이상을 차지하는 몇몇 거대 다국적 곡물 메이저들의 시장지배력이 막강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식량 수입국의 식량안보에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들 곡물메이저(곡물 마피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 속한다. 곡물메이저가 국내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차지함에 따라 곡물가격이 상승하면 전반적인 식품가격이 함께 상승하게 된다. 특히 곡물메이저는 가격상승기나 불안정기에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공급해 큰 이익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하루 빨리 식량안보 기반 구축과 자율적 수급체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논과 밭에 식량작물공동경영체, 식량작물비축자급기반확충 등 농지기반 이용률을 정책적으로 높여야 한다. 또 농지 관리를 범국가적으로 해, 최소한 땅 투기 세력들로부터 농지 보호와 관리 체계를 과감하게 해나가야 할 것이다. 제2의 농지개혁도 필요할 때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농지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우리에게 맞는 농업 체계와 영농법을 도입해야 하며, 힘 있는 젊은이들이 농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도입해야 한다. 50년 전 시행했던 새마을운동을 시대에 걸맞게 첨단화해 농어촌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필요할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범 국가적 노력과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이다.
허황 울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 울산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