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자와 공자의 교육방식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공자가 사학을 창립하고 “가르침에 출신을 따지지 않는다”(논어 ‘위령공’)라고 제창한 것은 중국 고대 교육사에서 매우 전향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속수 이상의 예를 행한 자에게는 내 일찍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었다”(논어 ‘술이’)라고 말했다. 속수는 말린 고기 묶음으로 간단한 예를 지칭한다. <예기> ‘곡례상’에서는 “예를 와서 배운다는 말은 들었어도 가서 가르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라고 했다.
묵자는 “지(知)는 접(接)이고, 려(慮)는 구(求)이다”(묵자 ‘경상’)라고 했다. 사람의 인식 능력은 또는 지식은 반드시 외부세계와 접촉해야만 얻을 수 있으니, 사고를 통해서 외부세계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묵자는 배우려고 하는 것과 가르쳐야 하는 것은 사람이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묵자는 “지식이 적으면서도 배우지 않으면 공(功)이 적고, 지식이 많으면서도 가르치지 않으면 공이 제자리에 머무른다”(묵자 ‘경하’)라고 했다.
묵자의 교육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비록 치지 않아도 반드시 울린다’라는 것이다. 교학의 적극성을 강조한 말이다. 유가의 교학 이념은 학생 주도로, 선생은 학생이 질문하면 반드시 대답하지만, 학생이 묻지 않으면 ‘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묵가의 교육에서는 상대가 물으면 답하고, 묻지 않아도 주도적으로 사람을 가르침에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르침에 출신을 따지지 않는다는 공자의 말은 적어도 속수 정도의 학비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묵자는 가르침에 어떤 물질적 조건도 제시하지 않았다. 묵자의 제자들은 대부분 모두 가난하여 속수의 예조차 행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묵자는 가르침에 보수를 따지지 않았다. 찾아오거나 먼저 묻지 않아도 가르침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먼저 묻고 찾아가서 가르쳤다.
요즘 뉴스에 문제 학생들에 관한 기사들을 가끔 본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 문제 학생들을 비난하거나 처벌하기 이전에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면서 그들이 그렇게 하기 이전에, 또는 그렇게 했을 때 먼저 그들을 찾아가서 그렇게 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하지 않았을까.
송철호 문학박사·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