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좋게 권역 감염병 전문병원들의 설계발표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코로나 시대여서 더욱 부각되는 면이 있지만 사실 감염병 전문병원에 대한 이야기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촉발된 관심이 관련법률 개정으로 이어졌고 2017년 국립중앙의료원이 중앙 감염병 전문병원 사업에 지정됐다. 권역 중에는 조선대병원이 호남권역으로 첫 지정됐다. 현재는 중앙 1개소, 권역 5개소(충청, 경북, 경남, 호남, 수도) 건립이 지정되어 있는 상태다. 이번에 본 병원들은 이들 중 총 3개소로 충청권역(순천향대병원 부속), 경북권역(경북대병원 부속), 경남권역(양산부산대병원 부속) 병원이다.
필자가 일하는 울산병원에서도 국가지정 음압병동 한개소를 운영한 바 있고 그 과정 중 코로나 사태가 끝난 후에도 감염관리 차원에서 병원에 적용할 부분들을 많이 배우게 되어 현재 조금씩 반영 중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권역 감염병 전문병원들은 그 이상으로 설계단계부터 고민을 철저히 한 흔적들이 가득했다. 배울 점이 많은 유익한 자리였지만 보던 중 감염병 전문병원들의 지지부진했던 진행과정들을 떠올리게 됐고, 자연스레 현재 타당성 평가 중인 울산의료원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됐다.
권역 및 중앙 감염병 전문병원들의 진행현황은 이렇다. 원래 서울의 국립중앙의료원은 2021년까지 병원 전체가 이전 및 신축되고 그 곳에 감염병 전문병원도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그 이전 전체가 무산됐다. 이후 새로운 부지를 선정해 검토 중이다. 처음에 요구되던 규모보다 축소되었고 아직 설계는 들어가지 못 했지만 사실상 이전 및 신축은 확정된 상태로 안다. 권역에 처음으로 지정된 조선대병원 부속 감염병 전문병원의 경우, 원래라면 내년에 문을 열어야 하지만 타당성 조사 및 행정절차에서 시간이 걸리면서 국비가 반납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업이 계속 지연되었고 5년이 경과한 지금에서야 중간 설계가 끝난 상태다. 수도권역인 분당서울대병원은 지정된 지 얼마 안 된 시작단계고 나머지 3곳은 앞서 설명했듯 설계 중이다. 설계가 거의 끝난 곳도 있고 중간단계인 곳도 있다. 냉정히 말하면 필요성이 대두된지 5년이 넘었지만 아직 단 한 군데도 첫삽을 못 뜬 상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메르스가 지나간 후 관심이 줄어든 게 클 것이다. 그러던 중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었고, 이제는 코로나 사태와 상관없이 앞으로 닥칠 수 있는 새로운 감염병에 대비해서라도 감염병 전문병원이 필요하다는 걸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역할이 분명했기에 시간이 걸렸음에도 계속 사업진행이 이어져오고 있는게 아닐까.
현재 울산의료원이 기획재정부에서 건립타당성 평가 중이다. 필자는 본지를 통해서 공공의료원의 필요성과 생긴다면 해줬으면 하는 역할에 대해 이전부터 이야기해온 바 있다. 울산에는 공공의료원이 없기 때문에 그곳에서 할만한 역할을 기존에 있는 병원들이 나눠서 해오고 있고 그럼에도 빈틈이 있다. 공공의료원이 생긴다면 그런 빈틈을 막아줄 수 있길 바라고 있지만 필자가 못 찾은건지 아니면 관련내용이 없는건지 새로이 건립추진 중인 울산의료원은 계획된 진료과만 본다면 그냥 평이한 병원이다. 역할 및 기능 등 좀더 구체적인 걸 찾아보려 해도 500병상에 인력은 어느 정도라는 규모 관련된 내용 외엔 찾질 못 했다. 게다가 같이 추진되고 있는 광주의료원은 350병상이기에 그 규모에서도 논쟁이 있을 듯 하다.
울산의료원 역할에 대한 기대는 그냥 필자의 일방적인 생각일 뿐이긴 하다. 그리고 이런 바람들이 타당성 평가 문제와 안 맞을 수도 있고, 타당성 평가를 일단 통과한 후 관련 내용들이 보강될 기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혹시나 ‘우리 울산도 규모가 번듯한 공공의료원이 하나 정도 있어야 한다’는 자존과 명분에만 크게 기반해 사업이 추진되는건 아닐까 살짝 걱정된다. 새삼스런 말이지만 지금 이 시점 울산에 공공의료원을 크게 짓는다면 중요한 건 그 실질적인 역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감염병 전문병원들은 그 실질적 역할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에 난항과 지연의 거듭됨을 넘어 진행을 지속하고 있다. 참고할 만한 사례일 것이다.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