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숙칼럼]잘못된 두 갈래 길 : 낡은 길·나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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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숙칼럼]잘못된 두 갈래 길 : 낡은 길·나쁜 길
  • 정명숙 기자
  • 승인 2022.11.0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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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숙 논설실장

울산시가 내년부터 처용문화제를 대신해서 공업축제를 하겠다고 한다. 공업축제를 대신해서 등장한 처용문화제를, 다시 공업축제가 대신하게 되는 셈이다. 처용문화제의 역사는 54년이다. 공업축제의 시작이 1968년이고, 1991년부터 처용문화제로 이름을 바꾸면서 횟수를 이어간 때문이다. 다소 어그러진 과정까지 합쳐서 억지로 햇수로만 꿰맞춘 역사이긴 하지만 숫자상으론 공업축제가 22회, 처용문화제가 32회에 이른다. 세월의 이끼가 꽤나 두툼하다. 울산사람들에겐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든 향토축제이지만 대표축제라는 이름은 늘 무색했다.

처용문화제를 여전히 울산의 대표축제로 고집할 이유는 없다. 주민화합과 관광자원, 어느 것도 해내지 못한 채 ‘나쁜 길’을 너무 오래 걸어왔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울산은 삼국유사 속 처용설화의 탄생지다. 신라에서 조선까지 역사를 이어온 처용은 검증된 것만 해도 자산가치가 엄청나다. 논문만 해도 300편이 넘는 처용설화는 국문학으로, 중요무형문화재(1971년)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09년)으로 등록돼 있는 처용무(處容舞)와 처용탈은 무용과 미술로, 한국 고유의 색과 형태를 갖춘 복식은 패션으로, 정통성은 물론 현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변주도 가능하다. 오히려 대표축제라는 명분을 버리고 규모를 줄여서 전국의 교수와 학생들, 그리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학술·예술축제로 전문성을 높이면 실속과 품격을 갖춘 문화자원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변화와 축소가 더 큰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대표축제로서 공업축제는 처용문화제와 상관없이 또 다른 차원의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가장 큰 문제는 제목이다. 공업(工業)은 제조업 또는 2차산업을 뜻하는 과거지향적인 단어다. 산업(産業)을 온전히 대체하기에도 부족하다. ‘낡은 길’로 되돌아가는 이미지다. 축제는 ‘제목이 반’이다. 미래산업을 포함하는 콘텐츠를 만들겠다고는 하지만 제목만 듣고 가보고 싶어지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또 다른 문제는 광역시 규모에 걸맞은 축제인가이다. 광역시가 되기 전, 인구 50만이 안 되는 소도시였기에 주민화합축제가 필요했고 가능했다. 지금은 그 역할을 기초단체가 하고 있다. 적어도 광역시의 축제라면 도시의 품격과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시민들의 자긍심과 정주의식을 높여줄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돼야 한다. 특정세대의 ‘추억팔이’라면 더더욱 예산을 쓸 이유가 없다.

새로운 축제개발과 같은 장기적인 사업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여론수렴과 심사숙고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은 여론도 수렴했고 깊이 고민한 결정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주변 지인들의 동조가 여론수렴일 수는 없다. 한번의 형식적인 토론회 개최를 심사숙고라고 해서도 안 된다. 지역주민들이 느끼기에 다각도로 점검하고 고민했다는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세번에 걸친 여론수렴이 필요하다. 첫째는 이 사업을 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다. 이 때는 전문가가 아니라 각계각층의 의견을 고루 들어야 한다. 전문가 집단은 이해관계가 있어 무조건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십상이다. 두번째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다. 이때는 전문가들이 깊숙이 참여해야 한다. 전문적 시각에서 방향성을 결정하고 구체적인 콘텐츠를 창출해야 한다. 세번째는 전문가의 결정이 시민 눈높이에 맞는지를 다시 한번 점검하는 과정이다. 현재 시민의 눈높이보다는 약간 높게 수준을 맞추어야 하므로 또 다른 전문가와 그 분야의 애호가들이 참여하는 것이 적절하다.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할 때 뿐 아니라 오랜 시간 지속해온 사업을 그만 둘 때도 이러한 심사숙고와 여론수렴이 필요하다. 공업축제와 처용문화제, 이 두 가지 모두 울산시민들의 마음 속에 제각각의 추억과 다양한 변주가 존재하는 전통문화가 돼 있다. 그럼에도 50년이 지나도록 성공적 축제로 성장하지 못했다면 버리거나 바꾸어야 한다. 다만 무엇을 버릴 것인가,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중요하다. 서둘러 결정할 일은 아니다. 지금부터 진지하고 차분하게 심사숙고를 시작해야 한다. 품격과 미래가 있는 축제 개발의 기회로 삼을 일이다. 정명숙 논설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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