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국어유감(國語遺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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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국어유감(國語遺憾)
  • 경상일보
  • 승인 2022.11.0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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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상귀 법무법인현재 대표변호사

국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나 의심을 갖는 사람이 별로 없다. 되돌아보면 일제강점기에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국어라고 가르쳤고, 우리말글은 조선어라고 불렀다. 일제강점이 공고화된 이후는 조선어학당 사건에서 보듯 조선어는 금지어이고 가르치는 것은 일본국 치안유지법에 저촉되었다. 해방이 되었음에도 일본어를 지칭하던 국어는 우리말글을 지칭하는 모양새로 살아남고 핍박받던 조선어라는 단어는 멀어졌다. 일제 교육자와 관련자들이 그대로 교육계에 남았던 탓일까 아니면 한민족의 따져 묻는 실력이 모자라서일까. 국가는 매년 10월9일 한글날을 휴일로 삼고 우리말글에 대한 행사를 하는데, 학생들은 수능과목인 국어책에 밑줄을 긋고 있다.

본시 국어(國語)는 춘추시대 말 공자와 동시대 인물인 노나라의 좌구명(左丘明)이 지었던 역사책(歷史冊)이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학교에서 일본어를 국어라고 가르쳤고 자연스럽게 일제강점기에 ‘국어’가 유입됐다. 일본인이 일본말글을 일어(日語)라 하지 않고 국어라고 한 이유는 일본군국주의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국어라는 단어는 영국이나 미국에 빗대자면 English가 아니라 National Language인 셈이다. 중국은 ‘한어’라고 부르며 중국어를 가르친다. 그들은 한족(漢族)이라 생각하니 일견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한민족(韓民族)이라고 핏대를 세우면서 학교에서 한국어를 국어라고 가르치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한글은 영어, 일어, 불어, 중국어 할 것 없이 비슷한 발음을 할 수 있다. 필자가 처음 영어를 배울 때 I am Tom, You are Jane,(아이 엠 탐, 유 아 제인)할 수 있었던 것은 한글의 덕분이다. 중국어 我是韓國人(워 쓰 한궈런 : 나는 한국인이다.), 프랑스어 Je m’apelle Kim(쥬 마펠 킴 : 나는 김이다) , 독일어 Ich liebe dich.(이히 리베 디히 : 나는 너를 사랑한다.) 어느 언어에도 적용되는 훌륭한 발음도구. 한글.

영어, 독어, 불어 등을 배울 때 알파벳 이외에 발음기호가 별도로 있다. 하지만 한글은 그 자체가 발음기호이니 얼마나 유용한가. 필자 생각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올바른(正) 소리(音)를 정리한 발음기호 모음집과 같다. 훈민정음 언문에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서 28자를 만든다고 되어 있지만 그 책은 각 기호마다 음가(音價)를 정해 둔 것이다. 한글발음을 하다보면 혀와 입의 놀림의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다. 말할 수 있는 단어가 무궁무진하니, 일본인이 마꾸 도나르도 함바꾸(Mc Donald Hamburger)로 발음하는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

주시경 선생 등이 1910년경 우리글을 큰 글이라는 의미로 ‘한글’이라 이름 지었다. 독일인에게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보물을 질문하면 상당수가 그림 형제의 독일어 사전이라고 한단다. 이들 형제는 체계없는 말을 집대성해 독일언어의 아버지들이 되었다. 독일어사전은 있던 말을 정리한 것인데 반해 우리 훈민정음은 세계 유일의 창작자가 있는 글이며 별도의 발음기호가 필요없는 바른 소리(正音)다.

쓰기 좋고 말하기 좋은 인류 최고의 정신적 문화유산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말글에 대해 조선왕조는 빛이 바랬고 대한민국의 시대이니 ‘조선어’로 하자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한민족의 말과 뜻을 가르치면서 중국 역사책도 아니고 일본어도 아닌데 ‘국어’라고 만연히 쓰는 것에 동의하기도 어렵다. 필자는 ‘한글’에 말을 첨가해 한국어를 ‘한말글(●말글)’이라 하면 어떨까 싶다.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히 여기는 것도 잘 따져보면 개선될 여지가 있는 게 있다. 국어라는 익숙한 단어도 곱씹어서 생각하면 바꾸어야 될 것 같다. 호수에 던지는 작은 돌이지만 누군가는 던져야 하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아울러 독자 재현께 국어와의 인연에 종언을 고할 것을 제안한다. 이제 국어를 대체할 역사와 가치에 부합하는 새 이름을 생각해 볼 때다.

전상귀 법무법인현재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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