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77)]문경 내화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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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혜숙의 한국100탑(77)]문경 내화리 삼층석탑
  • 경상일보
  • 승인 2022.11.1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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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혜숙 수필가

관세음보살이 관세음사과보살로 그러다 ‘사과보살, 사과보살…’을 일심으로 부르고 있었다. 몸은 탑돌이를 하는데 마음은 진즉에 사과밭을 향해 활짝 열려버렸다.

사과밭에 둘러싸인 내화리 삼층석탑은 보물이다. 기단이 단층으로 줄어들고 지붕돌의 층급 받침도 층마다 4단으로 간결하다. 통일신라 후기, 정형화된 신라 석탑 양식이 간소화 되는 시기에 건립되었다. 근처에 대승사나 김룡사 같은 천년 고찰이 자리한 걸 보면 이곳에도 큰 절이 있었을 것이다. 산골 깊숙한 곳에 홀로 남은 삼층석탑이 융성했던 한 시절을 증명하느라 온 몸으로 말을 걸어온다. 절터 한쪽으로 주춧돌을 비롯한 석조물들이 가지런하다.

제법 너른 터를 차지한 석탑은 한껏 여유롭다. 가지가 휘도록 붉은 사과를 단 나무들이 정연하게 열을 지어 경배를 올린다. 한 자리에서 지나새나 눈비 맞으며 과수원을 지켜온 것은 삼층석탑이다. 그래서 외부로부터 삿된 기운을 막으려고 탑은 오늘도 키를 키우고 있다. 쭉쭉 뻗어 올라 차일구름을 뚫을 기세다.

밀양 얼음골 사과 맛에 익숙하지만 중산간 지역인 문경의 사과 맛이 궁금했다. 과수원 둔덕에 앉아 있으니 입안에 절로 침이 고였다. 주인을 찾았지만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인가도 멀었다. 하는 수 없이 집에서 가져간 사과를 우걱우걱 씹어 삼킬 수밖에 없었다. 뭉글뭉글 구름이 몰려와 가끔 그늘을 만들어 주고 석탑의 지붕 끝에 투명한 가을볕이 놀다 갔다. 하지만 잿밥에 눈이 어두워 평정심을 잃은 탓에 삼층석탑을 건성으로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문경사과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을 수없이 지나쳐야 했다.

아파트 현관문을 들어설 때야 깨달았다. 빨간 사과의 주인은 내화리 삼층석탑이었다는 것을. 보는 내내 평온함을 안겨주며 주인임을 자랑했는데 아둔하여 탑골의 달콤한 가을 풍미를 놓치고 말았다. 아쉬움에 찍어온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사과꽃이 필 때쯤 다시 내화리로 길을 잡아야겠다. 관세음사과보살.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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