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정조대왕 전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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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정조대왕 전상서
  • 경상일보
  • 승인 2022.11.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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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풀벌레 소리 드높은 가을 저녁, 자작하며 건너편 잔에도 술을 채웁니다. 이 시간 삼경, 그대는 독서를 하고 있었을까요, 잠이 쉬이 들지 않아 편지를 쓰고 있었을까요? ‘군약신강’의 시대에 피 마르는 노론과의 정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정조대왕 이산 그대에게 잔을 올립니다. 학문은 신하를 앞서고 무예에 통달하고 백성을 사랑한 군왕으로 조선의 몇 안되는 대왕이지 않습니까. 아, 본인은 모르겠군요. 그대가 사대부 중심의 체제를 왕권과 백성 중심의 사회로 변혁을 노력 하였기에 후대는 개혁군주로 기억하며 대왕으로 부른답니다.

1752년 10월28일 출생이니 올해 270년이 되는군요. 경연에서 사대부 신하들을 가르칠 정도로 학문이 높았던 정조 그대께서 강조했던 중용의 내용입니다.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인지상의 군주였지만 나아가야할 때와 삼가 조심할 때를 분별하려고 노력하였지요. 몇 년 전 대왕이 정적인 영의정 심환지와 국정을 의논한 많은 편지들이 발견돼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대는 군왕의 위세보다 정적을 아우르는 포용력과 밤을 지새우는 정성으로 정치를 했던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나라를 어떻게 평가 하시나요? 통치자가 국제정세의 역학을 제대로 보며 헤쳐 나갈 혜안을 갖고 있다고 보시나요? 민생과 내치는 어떤가요? 그대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9월에 영국에 미완성 조문 이후 미국과 일본과의 회담문제 및 UN 총회에서의 막말까지, 우리의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큰 우려를 받는 모습입니다. 다수 야당이 사사건건 반대하는 것은 예상되었던 일이기에 대통령은 민생과 내치를 위한 초석을 다지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새 정부 6개월 동안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여기에다 편향된 인사, 영부인에 대한 의혹, 잦은 시행령 통치와 부자감세, 한·미·일 군사훈련으로 신냉전을 자초했습니다.

이런 중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젊은이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은 것에 가슴이 무너지고, 위패와 영정이 없는 분향소에 이해가 가지 않다가, 참사의 원인 보도를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새 정부가 일을 하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은 뭔가 무질서하고 구심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통령 중심제의 나라에서 대통령이 분명한 정치철학을 가지고 나라의 상황을 주시하여 보고 받으며 지시를 내리고 국정을 운영하며 국민을 위해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면 느껴질 수 있습니다. 대왕이 몸소 실천하였던 것처럼 통수권자가 그렇게 하면 그 분위기와 에너지는 최소한 장관, 구청장, 경찰서장 등의 행정책임자에게는 전해집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이번 일로 드러난 것 같습니다.

집권초기에 일련의 실패가 반복되어 지지율이 떨어지면 더욱 잘 해야겠다는 통치의지가 강해지며 힘을 줍니다. 힘을 주면 시야가 좁아지고 오랜 검사로서의 습관이 나오며 수사하고 고소하는 사정의 통치를 하는 것 같습니다. 나사돌리개가 해법인데 계속 망치만 쓰는 격입니다. 수십 년간 항상 내가 옳다고 여기며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던 그 페르소나와 아집을 과감히 벗어 던져야 합니다

이번 동남아 순방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아세안 국가들과 포용적인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제시했습니다. 우리 국민들에게 이런 노력을 해주기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각계각층과 허심탄회한 대화와 소통을 하여 분노와 슬픔을 치유하는 정성을 기울이고 구심점으로서 정부를 제대로 일하게 하는 각고의 노력을 하며 정적을 포용하고 나라를 안정시켜 주기를 바랍니다.

치열한 자기성찰과 결단을 하는 삶을 생각할 때 항상 떠오르는 정조 대왕 그대에게 한 잔의 술을 올립니다. 부디 난세에 우리를 지켜주시고 중용의 지혜를 심어주시기를 바라옵니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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