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년 전인 1997년 11월21일. 외환 부족으로 IMF에 긴급 구제금융 신청을 하면서 소위 ‘IMF사태’가 시작된 날이다. 필자는 당시 재정경제원에 근무하면서 위기대응을 위한 소방수 역할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기에 특별한 감회와 함께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최근 환율이 1400원대로 급속히 상승하면서 1997년의 외환위기가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불안한 시장 심리가 확산 조짐을 보인 적이 있다. 때마침 블룸버그통신이 통화가치가 상대적으로 크게 떨어지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거명하면서 1997년도처럼 동남아 금융위기의 재발 가능성을 언급하자 불안심리가 증폭되어 나타난 결과다. 우리 경제사에 가장 치욕적인 IMF사태를 경험한 국민들이 불안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자 심리적 방어기제라 하겠다. 그러므로 자칫 외형만 보고 위기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다 보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 두껑보고 놀란다”는 속담대로 IMF에 대한 트라우마가 재발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과거 IMF사태 당시에도 외환위기의 원인을 분석한 외환전문가들 중에는 위기 요인에 대한 과도한 시장 반응이 위기의식을 증폭시켜 실제로 위기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는 ‘위기 자기 실현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막연한 위기설과 과도한 불안감이 결코 경제와 금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경계해야 한다.
실제로 위기설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첫째, 미국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물가 불안을 진정시키려는 전례 없는 속도와 큰 폭의 기준금리 인상이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을 촉발하는 한편,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킹 달러’라고 부를 정도로 높이면서 각국의 통화가치를 크게 떨어뜨려 과도한 환율상승이 초래되었다. 급기야 환율 불안이 자국 내 경제안정을 해치지 못하도록 지나친 환율상승을 막으려는 ‘역 환율전쟁’의 조짐마저 나타나기도 했다. 자국 통화가치가 떨어져 국제 투자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려는 자구책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에 해당하는 우리나라도 미국 수준으로 금리를 올려 물가도 잡고 자본유출도 막아 환율을 안정시켜야 할 입장이 돼 버린 것이다.
둘째,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조짐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제국의 대러시아 제재조치와 이에 반발하는 러시아의 가스공급중단이라는 에너지 무기화 전략이 국제 에너지 가격의 급등세를 가져 왔고 아직도 안정될 전망은 불투명하다. 우리나라와 같이 자원 빈국의 입장에서는 원유, 가스 등 에너지 가격은 다른 원자재가격 상승과 함께 무역수지를 악화시키고,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국내 물가의 불안요인이 된다. 실제로 올 들어 지난 4월 이후 10월까지 7개월 연속으로 에너지 수입 부담이 가중돼 이로인한 무역수지 적자가 가중됐고 국내 물가도 자극받았다.
셋째, 미국의 자국 이익 우선주의에서 비롯된 ‘인플레 감축 법(IRA)’ 시행으로 자동차, 반도체등 대미 주요 수출업종 타격을 입었고 이는 경상수지에 부정적 효과로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그나마 경상수지의 흑자기조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위기설이 실상 너무 과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환율 불안정은 시의적절한 금리 인상으로 부작용이 발생할 소지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고 고금리로 타격이 불가피한 취약층에 대해선 탄력적인 가계부채대책이라는 정책적 과제로 해결이 가능하다. 지금 우리 외환사정은 ’97년도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IMF사태를 촉발한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외환 부족은 세계 8위의 외환 보유국이 되면서 자연히 해소되었고 외환보유고의 650%를 넘었던 단기외채비율도 지금은 안정권인 42%대로 낮아진 상태다. 또 우리는 대외자산이 대외부채보다 많은 순채권국이기 때문에 필요시 외환 공급 루트가 열려 있다는 점도 과거와는 다른 점이다. 물론 소규모 개방경제이므로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솥두껑을 보고 자라로 착각해 지레 겁을 먹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경제는 심리다. 약해진 마음을 타고 해외 투기세력이 우리를 다시 넘볼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도 정부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박대동 국민의힘 울산북구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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