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는 소설(小雪)인 동시에 ‘김치의 날’이기도 하다. 소설을 기점으로 기온은 급강하한다.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는 소설의 속담은 이 계절의 날씨변화를 잘 대변한다. 이렇게 기온이 떨어지면 가장 급한 것이 김장이다. 옛날 사람들은 소설 하면 곧바로 김장을 떠올렸다. 소설과 김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DNA로 뇌리에 박혀 있다.
‘김치의 날’(11월22일)은 지난 2020년 제정된 법정기념일로, 소설과 겹치거나 소설 전후에 위치한다. 세계문화유산인 김치 문화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지정한 날이다. 김치의 날은 김치 재료 하나하나(11월)가 모여 22가지(22일)의 효능을 나타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조선 헌종 때 정학유가 지은 가사 <농가월령가> 10월령(음력)을 보면 이 즈음의 풍경이 생생하게 되살아 난다.
시월은 초겨울이니 입동 소설 절기로다/ 나뭇잎 떨어지고 고니 소리 높이 난다/…/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깨끗이 씻어 소금 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조기 김치 장아찌라

소설 즈음이 되면 바람이 세게 불고 날씨도 추워진다. 예로부터 소설에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 소설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했다. 소설 무렵에는 첫눈이 내리는데, 24절기의 여덟째인 소만(小滿) 무렵에 봉숭아 물을 들이고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 물이 빠지지 않으면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고 믿기도 했다. 또 소설 무렵에는 감나무 잎이 거의 떨어지고 투박한 가지에는 빨간 홍시만 남아 있다.
감나무 가지 끝에/ 홍시 하나가/ 까치밥으로 남아 있었다/ 서릿바람 불고/ 눈발 날려도/ 가지 끝에/ 빨갛게/ 남아 있었다// 밤새 꺼지지 않던/ 빈자일등(貧者一燈) ‘홍시’ 전문(윤효)
빈자일등(貧者一燈)은 ‘가난한 자의 등불 하나’라는 뜻이다. 석가모니가 살아 있을 때 ‘난타’라는 한 가난한 여인은 수중에 가진 게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하루 종일 구걸에 나서 딱 한 푼의 돈으로 기름을 산 뒤, 등(燈) 하나를 손수 만들어 공양했다. 하룻밤이 지나자 모든 등불은 꺼졌지만, 난타가 바친 등불은 계속 빛을 발했다.
날씨가 추울수록 이웃을 돌보는 따뜻한 마음이 그리울 때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