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은 여러모로 힘들다. 9, 10월 동안 의욕적으로 프로젝트와 교육 행사들을 하고 나면 어느새 11월이 와 있다. 여름방학 동안 충전해 온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남아 있는 시간에 비해 해야 할 수업과 업무가 여전히 많아 아득하기도 하다. 학생들도 학년 말이 다가올수록 점점 어수선해지고, 전체적으로 붕 뜬 분위기가 되곤 한다. 그러다보니 11월은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올해도 11월이 시작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학생들이 다치는 일들이 잦아졌다. 복도에서 장난을 치다가 벽에 머리가 부딪히거나, 운동장에서 만난 상급생과 마찰이 생겨 다쳐오는 일 같은 것이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학생은 없었지만 그런 일들이 생길 때마다 마음을 졸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학생이 보건실에 갔다가 돌아오면 보건 선생님의 소견을 듣고 바로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한다. 사건이 일어난 상황과 부상 정도를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하고, 혹시 학생이 아파하면 다시 연락할 것이며, 궁금한 점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겨둔다. 물론 상황이 심각할 경우에는 바로 전화를 하지만 심한 부상이 아니었고, 연락을 하는 상황도 수업시간 중이라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문자메시지가 상황을 더 간결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이 다쳤을 때를 비롯해 여러 가지 학교생활 문제로 연락을 하면 보호자들에게서 신경써주어 고맙다거나, 아이가 장난이 심해서 선생님이 고생이 많다는 식의 인사가 돌아오곤 했다. 그것이 설령 빈말이더라도 보호자들이 교사의 수고를 알아준다는 것에 위로가 되었다. 가정에서 교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자녀를 지도해서 학생이 변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답장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학생의 문제 행동에 대해 보호자에게 의견을 전달해도 “집에서는 우리 아이가 그렇지 않다”며 부정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언젠가부터 나의 일은 당연한 노동이 되었다. 고마울 것 없이 당연히 해야 마땅하고 하지 않으면 꼬투리가 잡히는 일이다. 한편, 있었던 사실을 보호자에게 전할 때도 그것이 학생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자니 어느새 문장은 길어진다. 어쩌면 나는 학생들의 일로 연락을 하면서도 학생을 걱정한 것이 아니라 나의 직을 염려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일이 있은 뒤 바로 연락했다는 증거를 남기지 않으면 나의 교직 생활이 위험해질 수도 있을 거라는 불안이 장문의 문자메시지로 전송되고 있었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의무연수 가운데 “교육 활동 침해와 아동학대 사이에서 분쟁이 생기면 무조건 아동학대가 이깁니다”라는 말을 듣는다. 교실에서 마주한 학생과 그 보호자를 언젠가 법원의 한 공간에서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고개를 세게 저으며 의식적으로 어깨를 편다. 움츠러들지 않고, 존엄을 지키며 일하고 싶다.
이민정 온남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