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나이 먹어도 월드컵을 못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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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나이 먹어도 월드컵을 못잊는 이유
  • 경상일보
  • 승인 2022.11.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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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모 대송중학교 교사

인류 최고의 축제인 월드컵 기간이다. 한국 축구는 이번에도 16강을 목표로 노력해왔다. 한 때 32년간 월드컵에 올라가지 못했던 한국은 36년(10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울 정도로 아시아의 축구 강국이 되었다. 한국의 월드컵 도전사를 교육현장과 묶어서 글을 써보고자 한다.

한국의 최초 월드컵 출전은 1954년 스위스 대회였다. 가난한 한국은 비행기 표값이 없어서 미군 수송기를 얻어 탔다. 5개국을 거쳐 스위스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선수들은 유니폼에 등번호를 바늘로 겨우 꿰맸고, 시차 적응할 시간도 없이 헝가리전 9대0, 터키전 7대0으로 대패했다. ‘전쟁을 치른 열악한 국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투지’를 유럽 중계진이 설명해줬기에 누구도 한국팀을 비웃지 못했다. 경기 후 한국팀 숙소 앞에 음식, 옷, 생활물품을 놓고 간 외국인들이 있었고, 선수들에게 힘이 되었다. 열악한 환경임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응원을 받는 것과 유사하다.

86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한국은 본선 진출이 불투명해지자 감독을 교체했다. 김정남 신임 감독은 4연승(12득점, 1실점)에 일본과의 두 경기를 2대1, 1대0으로 모두 이기며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한국은 월드컵에서 1무 2패를 당했지만, 86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하는 성과를 냈다. 학생들은 새옹지마, 고진감래를 배웠다.

학교에서 월드컵을 시청하게 된 것은 1994년 미국 월드컵부터다. 교실마다 TV가 설치됐기 때문이다. 1994년 6월18일 토요일 1, 2교시에 전교생이 스페인전을 봤다. 종료 직전 서정원의 2대2 동점골로 학교 전체가 환호했다. 울산 인문계 고교생은 16강 진출의 갈림길인 볼리비아전을 모의고사를 치느라 보지 못했다. 우승후보 독일을 벼랑까지 몰아붙인 본선 3차전은 졌지만 뿌듯했다.

98프랑스 월드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멕시코 블랑코의 개구리 점프, 네덜란드전 5대0 참패는 우리에게 인생의 쓴 맛을 제대로 보여줬다. 설레발 떨던 학생, 교사 모두 풀이 죽어 학교에 왔다. 직장인도 출근길이 무거웠다. 온 몸을 날려 무승부를 기록한 벨기에전으로 희망을 되찾았다.

2000년 이전에 우리는 월드컵 14경기 4무 10패로 처참했고, 타국 입장에서는 승점 자판기였다. 겉저리 시선을 받는다해도 한국은 ‘이번에는 다르다’며 계속 월드컵에 도전했고, 그 때마다 세계의 벽에 좌절했다. 한국 축구팀은 어찌 보면 평범한 학생과 유사했다. 특출나지 않은 실력, 보듬어야할 점이 많음, 어쨌건 출석….

한국 축구 도전사가 잊혀지 않는 이유는 학창시절처럼 부족한 면이 많았고, 휘청대며 성장했던 우리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함께 울던 날이 더 기억나는 법이기도 하고.

김경모 대송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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